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자전거 타고 만리장정… 뒷골목서 만난 중국 민초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자전거 타고 만리장정… 뒷골목서 만난 중국 민초

입력
2013.05.24 13:33
0 0

농민·인력시장…명소보단 민중 속으로60일간의 대륙 여행기

풍경 먹거리 전설 페스티벌 따위에 대한 관심이 심히 부족한, 대신 눈빛이 마주친 사람들의 머릿속에 든 생각에 대한 몰입도가 대단히 높은 중국 여행기. 자전거 라이더(rider)이자 자전거 라이터(writer)인 홍은택씨가 썼다. 홍씨는 언론사, 포털 업체, 모바일 업체 등에서 일했거나 일하고 있는데, 이 책엔 적잖은 시간을 기자로 밥 벌어 먹은 자 특유의 가락이 배어있다. 여행 에세이인데 책장을 덮고 나면 신문 칼럼을 읽은 듯한 여운이 남는 독특한 책이다.

'문혁의 깊고 어두운 골짜기를 통과한 런민광장은 한동안 용도가 불분명한 채 있다가 1989년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처럼 상하이와 인근 대학생들이 이곳에 모이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격렬한 정치 토론이 오갔고……지금은 런민광장에서 젊은이들이 데이트를 한다. 인민은 없고 개인만 있다.'(40~41쪽)

홍씨에게 중국이란 나라는 대학교 2학년 때 전공을 동양사학과로 선택한 순간부터 "뭔가 옆구리를 간질이는 나라"였다. 이번 여행은 유럽과 비슷한 크기의 땅덩어리에 56개 민족, 14억 인민이 모여 이뤄진 그 나라에 대한 30년 묵은 궁금증을 푸는 숙제 같은 것. 이 책에 앞서 80일간의 미국 대륙 자전거 횡단 여행을 라는 책으로 펴낸 그는 '레드 차이나를 찾아서'라는 테마로 여행을 기획했다. 프롤로그에 이렇게 썼다.

"중국에서 붉은색은 사회주의를 뜻한다. 시장경제 도입 이후 붉은색이 쇠퇴했다는 얘기가 서방 언론을 통해 들려오는데, 사회주의적 평등의 문화와 가치가 과연 얼마나 남아 있는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자전거는 60일짜리 여행 비자의 한계 안에 대륙 여행을 끝내야 한다는 여건과 사람들의 체취를 직접 맡을 수 있어야 한다는 목적을 적절히 아우르는 이동 수단이었다. 총 주행거리 4,873㎞. 홍씨는 일속(日速) 81㎞로 중국의 8대 고도(古都)를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며 중국의 어제와 오늘, 도시와 농촌을 들여다봤다. 이름하여 만리장정(萬里長程). 시안, 베이징, 뤄양, 난징, 항저우 등 각 왕조의 도읍을 아우르고 황허와 양쯔강의 물길을 더듬는 여행이다. 단 두 달에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부를 섭렵한 셈.

홍씨의 시선은 으리으리한 절경이나 벅적한 명소가 아니라 평범한 중국 사람들, 라오바이싱(老百姓)의 얼굴에 오래 머문다. 허난성에 급격히 퍼지고 있는 교회 십자가를 보며 고도성장의 그늘에서 의지할 곳 없는 농민들의 마음을 읽고, 인력자원시장에서 삯일꾼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실랑이를 지켜보며 중국 사회의 미래를 예감한다. 서로 철천지원수가 되기에 모자라지 않은 차이와 갈등, 동시에 14억이 하나여야 한다는 강력한 전체주의가 병존하는 풍경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자전거 안장 위에서 바라본 중국, 중국인의 내면.

유상호기자 sh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