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학에서 영어 강의가 허용될 전망이다. 자국어를 보호한다는 취지로 대학에서 영어 수업을 금지했던 프랑스가 국제 경쟁력 하락을 막는다는 이유로 영어에 문을 열기로 한 것이다.
프랑스 하원은 23일 고등교육법 개정안 중 대학의 불어 사용 의무화 내용을 삭제하는 조항을 승인했다. 이 조항이 포함된 개정안은 이달 말쯤 의회 본회의를 무난하게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유아 때부터 영어 교육에 열을 올리는 한국에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프랑스의 자국어 수호는 유럽 국가 중에서도 유별나다. TV에서 영어를 들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길거리 표지판이나 간판에도 불어 외 다른 언어를 사용할 수 없다. 1994년에는 당시 문화부 장관이던 자크 투봉의 주도 아래 불어 전용법인 투봉 법안을 신설, 일부 대학의 외국어 수업을 제외한 모든 강의에서 외국어 사용을 금지했다.
그러나 2010년 세계 3위였던 외국인 유학생 수가 5위로 밀려나고 실력 있는 학생들을 독일 등 다른 국가들에 뺏기면서 대학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높아졌다. 이에 주느비에브 피오라조 고등교육장관은 이달 초 외국어 강의를 허용하는 내용의 피오라조 법안을 발의했다.
피오라조 장관은 이날 "법안에 대한 논란이 계속됐다면 프랑스에는 패배주의적이고 폐쇄적인 이미지가 더해졌을 것"이라며 "하원 결정으로 프랑스 교육이 한 걸음 진일보했다"고 환영했다. 정부는 대학 내 영어 강의를 허용함으로써 현재 12%인 외국인 학생 비율이 2020년쯤엔 15%로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과 일부 대학들은 '불어 말살 정책'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야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의 자크 미아드 의원은 "외국어를 쓰는 사람은 점점 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간다"며 이 법안이 프랑스의 정체성을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프랑스 한림원(아카데미 프랑세즈)도 불어전용법 폐지를 "스스로를 파괴하고 경시하는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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