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이 두려워지기 시작하면 이미 늙은 증거라는 우스갯소리를 듣는다. 제 손으로 밥 한 끼 해결하지 못하는 이 나라의 남자들로서는 더 이상 이래라저래라 큰소리치지 못하는 처지에서 곰탕은 아내의 장기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남자들은 어려서부터 남자는 부엌 출입하면 안 된다는 말을 면허증처럼 내세우며 상차림에는 전혀 도움 주지 않으면서도 맛 타박만 입에 달고 살았을 것이다. 그 못된 버릇 못 버리고 아직도 착각하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다.
사골곰탕을 담아낸 뚝배기에는 사골이 없다. 적당하게 고기 몇 점 썰어 넣고 파도 송송 썰어 담으며 소금으로 간하고 입맛에 따라 고춧가루를 넣는다. 밤새 곤 사골은 제 모든 양분을 내놓고 정작 상에는 오르지 못한다. 그래도 사골이 곰탕 맛을 좌우하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그 사골이 없다고 사골곰탕이 아니라거나 몇 점의 고기나 파가 곰탕이라고 우기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렇게 여기는 이들도 제법 있는 모양이다. 청맹과니들이다.
도서관의 주인은 물론 이용 시민들이다. 그럼 그 주인들에게 최고의 독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사서이다. 사서는 도서관에서 책을 관리하고 열람을 도우며 대출 서비스를 담당하는 직업쯤으로만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일까? 여기저기 도서관 건물도 근사하게 짓고 상당한 비용 지원하며 장서의 수도 늘리는 데에는 이제 어느 정도 신경을 쓰지만 정작 그 도서관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보다 나은 문화적 서비스를 창출하는 사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그저 도서관에서 얌전히 앉아 책 읽고 수동적인 서비스만 제공하면 되는 단순한 직업이라고 여기기까지 한다. 사서가 전문직이라는 인식조차 없다.
분명히 법적으로는 인구 6,000명 당 1명의 사서를 두게 되어있지만 그걸 지키는 도서관은 전무할 것이다. 그런 법령을 만든 이유가 분명 있을 터인데. 심지어 여러 대학에서도 학문의 보고인 도서관에서 사서가 퇴직하면 새로 뽑지 않고 눙치며 비정규직으로 채우려 하는 세태이니 각 지방자치단체나 교육청 산하의 도서관은 오죽하겠는가? 인문정신과 더 나아가 민주주의 정신이 제대로 꽃피우고 문화 콘텐츠의 원천적인 힘이 만들어지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다. 도서관이 그 도시의 중심이냐의 여부로 그 지역과 나라의 문화를 가늠해볼 수 있다.
그런데도 공공도서관의 사서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심지어 사서 출신 도서관장도 드물 지경이다. 정작 사서들이 해야 할 엉뚱한 일들이 쌓여있으니 책을 연구하고 보다 좋은 정보를 제공하며 독서의 방향과 수준을 향상시키는 일 등에 쓸 시간과 에너지를 얻을 수 없다. 오죽하면 오히려 사서가 된 이후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한탄하는 경우도 있겠는가. 이러고도 과연 양질의 문화 콘텐츠를 만들겠다느니 스토리텔링으로 미래를 먹여 살릴 신사업을 육성하겠다느니 하며 우물에서 숭늉 찾고들 있다. 도서관의 핵심은 사서다. 사서의 진짜 핵심적 업무는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수집하고 책에 관한 보다 나은 서비스를 계발해내는 일이다. 그 일에 전념하게 해야 한다. 다른 부서들은 사서들이 최상의 독서 문화와 콘텐츠를 계발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이 사서를 마음대로 부리고 좋은 자리는 자기네들이 덥석 차지한다.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적어도 도서관장은 사서 출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조례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사골이 없으면 제대로 된 곰탕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뚝배기에 사골이 담겨 있지 않다고 사골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그 존재에 무지하지는 않다. 본질은 외면한 채 껍데기로만 판단하고 결과물에 대한 탐욕만 앞서면 좋은 곰탕을 만들어낼 수 없다. 그런데 사골은 빼버리고 자기네들끼리 성골 진골 타령하고 있는 걸 보면 가소롭고 우리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 남자들, 늦기 전에 곰탕 데우며 혼자라도 끼니 놓치지 않고 사는 법이나 제대로 배울 일이다. 그런데 사골 알기를 그저 그런 소뼈다귀쯤으로 여기는 이들이 곰탕 맛이나 제대로 알려는지 모르겠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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