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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민주당 지도부, 옹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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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민주당 지도부, 옹졸하다

입력
2013.05.23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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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대통령선거를 5일 앞둔 1992년 12월 13일, 김대중 민주당 대선 후보는 경북 안동 유세를 마친 뒤 서울로 올라와 입당한 예비역 장교 32명과 함께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전격 방문해 이승만ㆍ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김 전 대통령은 94년에 쓴 자서전 에서 이날의 소회를 밝혔다. "나는 나를 죽이려 했고 감옥에 보내고 연금시킨 박정희씨의 무덤에 찾아갔습니다. 그가 죽은 뒤에나마 화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박정희씨가 죽을 때까지 생전에 한번도 그와 대화를 갖지 못한 것을 가장 큰 아쉬움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5년 뒤인 97년 15대 대선에 재출마한 김 전 대통령은 경북 구미시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해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약속하며 '역사적 화해'를 보여줬고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 전 대통령은 이후에도 박정희기념사업회 명예회장을 맡아 이 사업을 지원했다.

새삼 21년 전 일을 떠올리는 것은 최근 민주당 지도부가 보여주는 옹졸함을 지적하고 싶어서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지난 6일 당 대표에 당선된 뒤 국립현충원을 찾았지만 김 전 대통령 묘소만 참배하고 돌아왔다. 김 대표 측은 다른 두 전직 대통령 묘소를 찾지 않은 이유에 대해 "오전에 최고위원회의 등이 예정돼 있어 부득이 방문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 묘소와 박 전 대통령 묘소는 김 전 대통령 묘소로부터 각각 100m, 350m 떨어져 있다. 김 대표 측의 변명이 군색하다.

전병헌 신임 원내대표도 21일 원내지도부를 이끌고 국립현충원을 찾았지만 역시 김 전 대통령 묘소만 참배했다. 전 원내대표는 김 전 대통령 묘소만 따로 찾은 이유에 대해 "DJ(김대중)에게서 정치를 배운 인연이 있는 만큼 정치적인 제자로서 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대선 때 국립현충원을 방문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도 김 전 대통령 묘소만 참배했다. 그는 "가해자 측의 과거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지난해 8월20일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박근혜 후보는 다음날 오전 당 지도부와 함께 국립현충원을 찾아 세 전직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한데 이어 오후에는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에 헌화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3일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 4주기 추모식에 참석했다.

김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이 보인 행보엔 선거기간 표를 얻기 위한 계산도 깔려 있을 것이다. 국민이 모를 리 없다. 그러면서도 국민은 자신을 죽이려 한 사람의 묘소에 고개를 숙이고 생가를 찾아가 화해하는 모습에 감동한다. 김 전 대통령의 92년 두 전직 대통령 묘소 참배는 97년 시작된 민주당 10년 집권의 씨앗이 됐다. 그의 화해와 통합의 열린 정치 때문에 민주당은 2002년 경남 출신 대선 후보를 선택할 수 있는 확장력을 얻었고 연속 집권에 성공했다.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뿐만 아니라 김한길 대표를 정치로 이끈 사람은 김 전 대통령이다. 두 사람은 청출어람(靑出於藍)은 고사하고 '편가름 정치'의 용렬함으로 정치 스승의 이름에 먹칠을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김 대표는 지난 19일 서울광장에서 벌어진 노 전 대통령 추모제에 참석하려다 친노(親盧) 시민들에게 봉변을 당했다. 그렇게 내편만을 챙겼는데도 민주당은 어느 때보다 격심한 계파갈등의 홍역을 앓고 있다. 편가르기식 정치가 내재화한 결과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여야가 긴장하고 있다. '안철수 신당'은 창당 전인데도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을 뛰어넘고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신당으로 갈 의원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모를 일이다. 신당 바람이 강해서가 아니라 '편협한' 민주당의 체질이 워낙 약하기 때문이다. 안 의원은 지난 대선 때 국립현충원 세 전직 대통령의 묘소를 모두 참배하며 방명록에 "역사에서 배우겠다"고 썼다.

김동국 정치부 부장대우 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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