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행진을 이어가던 일본 증시가 폭락하고 국채이자는 폭등했다. 중국 경기 부진의 영향이 크지만 대규모 양적완화(돈을 찍어 시중의 채권을 매입하는 금융완화정책)로 승승장구하던 아베노믹스의 약발이 꺾이는 신호탄이라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23일 일본 닛케이 평균주가는 1,143엔28전(7.32%) 떨어진 1만4,483.98로 마감했다. 일본 정보통신(IT) 거품 붕괴로 주식이 폭락한 2000년 4월 17일 이후 최대 낙폭으로 역대 열한 번째다. 도쿄증권거래소 1부시장 상장 종목을 대상으로 하는 토픽스(TOPIX) 지수도 6.87%(87.69포인트) 폭락한 1,188.34로 마감했다.
이날 오전 개장 당시만 해도 달러당 103엔 대까지 떨어진 엔저에 힘입어 닛케이지수는 1만5,900대까지 치솟는 등 과열 양상을 보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발표된 중국의 5월 HSBC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잠정치가 시장예상치보다 0.8 낮은 49.6으로 집계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중국 경기 전망에 대한 우려가 확산됐다"고 폭락 원인을 분석했다. 신문은 "전날 일본은행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일본 장기금리 상승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하지 않자, 추가 금리 상승을 우려한 해외 헤지펀드 등이 매도세로 돌아선 것도 (주가 폭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주가 하락의 여파로 이날 오후 오사카 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닛케이 평균주가 선물거래가 중단되기도 했다. 일본 증권업계는 지난달 일본은행이 대규모 양적완화를 발표한 이후 급속한 엔저와 함께 일본 증시가 이상과열 현상을 보이다가 중국발 악재를 계기로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업계는 중장기적으로 일본 주식시장이 활황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견해를 포기하지 않고 있지만, 이번 폭락은 투자자의 약세 심리가 확산된 것으로 아베노믹스의 낙관론에 경종을 울린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런 가운데 이날 일본 국채시장의 장기금리가 급등, 10년만기 국채 수익률이 한때 1%를 기록했다. 국채 수익률이 1%에 도달한 것은 지난해 4월 이후 1년 2개월만이다. 교도통신은 "장기금리 상승은 주택대출과 기업대출 금리 인상으로 연결돼 회복세에 있는 일본 경기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 증시 폭락에는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의장의 발언도 영향을 미쳤다. 버냉키는 22일(현지시간) 미 의회 합동경제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통화정책의 시급한 긴축선회는 금리를 일시적으로 끌어올리고 경제 회복세를 끝내거나 늦추는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해 양적완화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는 질의응답과정에서 "출구전략이 언제 시작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앞으로 열리는 몇 차례의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검토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발언을 계기로 9월 FOMC 때부터 출구전략이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버냉키가 출구전략을 향한 '작은 창'을 열었다"고 진단했다.
미국과 중국, 일본의 악재 소식에 국내 증시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날 코스피는 양적완화 조기 축소 우려에 7.92(0.40%)포인트 하락한 1,985.91로 출발했다. 이어 중국의 제조업지표 악재에 일본증시 폭락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낙폭이 더욱 커져, 결국 24.64포인트(1.24%) 하락한 1,969.19로 마쳤다.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140억원, 1,914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 하락을 이끌었다. 박옥희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3개국 악재가 더해지면서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기관의 순매도 물량이 확대돼 낙폭을 키웠다"고 분석했다.
한편, 원ㆍ달러 환율은 양적완화 축소 우려에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14.7원 오른 1,128.7원을 기록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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