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조업 중국어선의 '진짜 선장'이라고 자백했던 중국인 Z(39)씨가 해양경찰 접견 직후 말을 바꿔, 해경이 '면피'를 위해 자백 번복을 유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해경은 과거 Z씨의 동종 전과 기록을 파악하지 못해 부실조사 비판을 받았다.
Z씨 등 9명은 지난해 11월 인천 옹진군 소청도 인근에서 불법조업을 하다가 해경에 적발되자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저항한 혐의로 기소됐다. 체포 당시 자신을 항해사라고 한 Z씨는 1심에서 징역 2년에 벌금 3,000만원이, 선장이라고 한 P(39)씨는 최고 책임자라는 이유로 9명 중 가장 무거운 징역 2년6월에 벌금 4,000만원이 선고됐다.
이후 P씨는 항소심에서 "진짜 선장은 Z씨"라고 폭로했고 Z씨는 "내가 진짜 선장이며, 일반 선원인 P씨에게 선장인 척 하게 하고 나는 항해사로 가장했다"고 자백했다.
Z씨는 그러나 지난 21일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 김기정) 심리로 열린 항소심 3차 공판에서 돌연 "나는 선장도, 선원도 아니며 선장 일을 배우는 위치였다. 선장은 P씨"라며 말을 바꿨다. Z씨는 증언을 바꾼 이유를 묻는 재판부 질문에 "해경이 찾아와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법원과 검찰이 형량을 올릴 것'이라고 했다"고 답했다.
실제 본보가 입수한 해경 수사보고에 따르면 해경은 'Z씨가 자백했다'는 본보 보도(5월 2일자 10면) 이튿날 경기 안양교도소에서 Z씨와 1시간30분간 접견했다. 이후 해경은 '보도내용 확인 결과 P씨, Z씨의 변호사가 Z씨를 만나 선장이라고 말하라고 강요해 Z씨가 거짓 자백을 한 것'이라고 결론지었고, 검찰은 이 수사보고를 재판부에 냈다.
그러나 진짜 선장은 Z씨라는 게 해경을 제외한 대부분 사건 관계자들의 견해다. Z씨가 체포 당시 이름과 생년월일을 허위로 진술, 해경을 속여 전과를 감춘 전력이 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Z씨는 2002년 6월 선장 신분으로 한국 바다에서 조업을 하다 구속기소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었다. Z씨가 이번에 타고 넘어온 배의 주인이 Z씨 부인인 W(37)씨라는 사실도 항소심에서 확인됐다. 중국 불법조업 어선 선장들은 선주가 자신으로 드러날 경우 형법에 따라 배를 몰수당할 수 있기 때문에 선주를 부인 등 명의로 등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해경이 'Z씨는 선장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이유는 2002년 Z씨 체포 당시 지문과 얼굴 사진을 확보하고도 전과를 확인하지 못해 1심에서 부당하게 낮은 형이 선고되게 만든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Z씨가 선장으로 드러날 경우 더 큰 비난을 사게 돼 1심 판결을 유지하기 위해 해경이 Z씨를 회유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해경 관계자는 이에 대해 "중국에 있는 부인 W씨가 보낸 진술서가 선장은 P씨며 Z씨는 항해사라는 수사 결과와 일치해 그렇게 수사보고를 냈다"며 "Z씨를 만나 진술서만 받았을 뿐 선장이라고 말하면 추가 처벌을 받는다고 경고한 적 없다"고 말했다. 전과를 확인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2002년 당시와 현재의 지문입력 시스템이 달라 오류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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