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한반도 정세는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3월과 4월의 한반도는 잔인한 나날들이었다. 한미합동 군사연습에 따른 대규모 무력시위와 이에 맞선 북한의 말 폭탄으로 한반도는 '준전시상황'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지난 몇 달간 우리 국민들 중에 상당수는 과거와 다른 전쟁의 공포를 경험했을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한반도에서 위기가 고조된 것은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따른 것이다. 북한이 핵선제타격권리까지 언급하면서 공세적으로 나오자, 미국은 핵무력을 총동원해 '핵심축'(린치핀) 한국에 대한 확장억지 차원의 핵우산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이에 맞서 북한은 미국에 전면대결전을, 남측에 전시상황을 선포하고 핵선제타격과 통일성전을 공언했다.
무력시위와 말 폭탄이 '공포의 균형'을 이루면서 별다른 무력충돌 없이 위기를 넘기고 있다. 4월 중순 북한의 오판을 우려한 한미가 대화를 제의하는 등 국면전환 움직임을 보였다. 북한도 3월 말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열고 경제건설과 핵무력의 병진노선을 채택하고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노력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삼사월을 돌이켜보면 북한의 노이즈마케팅이 일정한 성공을 거둔지도 모른다. 북한의 말로 하는 위기조성과 개성공단 잠정중단 등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높이고, 한국경제의 대외신인도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 무엇보다 외부 세계의 핵포기 요구에 초점을 흐리게 하면서 핵보유국의 지위를 객관화하려는 북한의 전략이 '성공'했는지도 모른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의 불똥이 개성공단으로 튀었다. 개성공단이 잠정 중단됨으로써 남북관계도 전면적으로 단절됐다. 북한이 취한 정전협정의 백지화, 불가침합의 파기, 남북 직통전화선 차단 등으로 남북관계는 정전협정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갔다. 물론 북한이 일방적으로 정전협정을 파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전질서의 불안정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3차 핵실험 이후 북한은 정전질서를 평화질서로 바꾸는 판 갈이 차원의 새 판짜기를 요구하고 있다. 판을 크게 키워놓은 북한은 개성공단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한적인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남측 정부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 등 한반도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큰 그림을 가지고 대화하길 희망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문제 해결을 위한 제한적 대화를 제시하고, 큰 그림의 세부 내용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큰 그림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다.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은 북핵불용, 인도적 지원 용의, 신뢰가 쌓이면 남북경협 활성화 등 밑그림 정도다. 북한이 변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어떻게 신뢰를 쌓고, 비핵화를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이 보이지 않는다. 북핵 불용이외에 6자회담 재개에 대해서도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이 북미 적대관계 해소와 평화협정 체결 등 한반도 근본문제를 제기하는 데 비해서 박근혜정부는 인도적 대북지원과 동북아국가들 사이의 비정치적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조하는 등 기능주의적 접근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핵을 용납할 수 없다는 남측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핵보유를 법으로 규정한 북측의 경제건설과 핵무력의 병진노선은 충동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8일 미국 의회 연설에서 "북한은 핵보유와 경제발전의 동시 달성이라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세웠다"고 비판했다. 이에 맞서 북한은 "신뢰 프로세스는 변함없는 동족대결정책"이라고 비난하고 핵포기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김정은 시대 북한이 김일성의 한반도 비핵화 유훈을 폐기하고 핵보유를 강행하는 것은 발칸반도와 중동의 독재자들이 미국의 공격으로 실각한 데서 교훈을 찾기 때문이다. 결국 신뢰 프로세스가 작동하려면 먼저 불신을 해소하고, 북핵해결과 평화를 제도화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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