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팬택 지분 10%를 투자한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직접 경쟁하는 두 회사가 지분제휴 관계를 구축한 건 극히 이례적인 결정이다. 예상 못한 ‘적과의 동침’이 성사됨에 따라, 향후 시장에 상당한 변화가 일 조짐이다.
팬택은 22일 이사회를 열어 삼성전자가 제3자 배정방식의 유상증자에 참여, 지분 10.03%를 보유토록 결정했다. 삼성전자가 팬택에 지불할 증자대금은 530억원이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퀄컴(11.96%), 산업은행(11.81%)에 이어 팬택의 3대 주주가 된다. 다만 퀄컴처럼 삼성전자도 경영엔 일절 관여하지 않으며, 박병엽 부회장 중심의 현 지배구조에는 변화가 없다.
그 동안 팬택은 삼성전자에 대해 공격적 행보를 유지해왔다. 일각에선 ‘달걀로 바위 치는 격’이란 비아냥도 있었지만, 삼성전자의 새 스마트폰 출시일에 맞춰 팬택도 새 제품을 내놓는 등 항상 정공법을 택했다. ‘계급장(브랜드)을 떼고 품질로 맞붙으면 이길 자신 있다’는 얘기도 서슴지 않았다. 때문에 이번 지분제휴는 더욱 파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빅딜’을 먼저 꺼낸 건 박병엽 부회장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 부회장은 삼성전자 CEO인 권오현 부회장에게 지분투자를 제안했고, 이건희 회장의 최종 재가를 받아 성사됐다는 후문이다.
앞서 박 부회장은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이준우 부사장을 공동 CEO로 앉히고, 본인은 돈을 끌어오기 위해 현장을 뛰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력으로 제품을 잘 만들어도 마케팅과 브랜드파워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이른바 ‘승자독식’ 구조를 깨기 위해 “목숨을 걸고서라도 1,000억~2,000원을 외부에서 끌어오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본유치 대상이 삼성전자일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터. 때문에 업계에선 ‘박병엽의 승부수’가 또 한번 통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번 제휴는 양사 모두 ‘윈-윈’이란 게 업계의 시각이다. 항상 자금력 부족에 시달려온 팬택은 500억원이 넘는 유동성을 확보함으로써, 연구개발과 마케팅 투자에 숨통을 틀 수 있게 됐다. 박 부회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품질력, 상품력을 갖춘 팬택을 삼성이 정보통신기술(ICT) 진흥을 위한 상생과 공존을 위한 틀로 본 것 같다. 삼성이 전체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 책임 있는 노력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본다”며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물론 삼성전자로서도 나쁠 것 없는 딜이다. 삼성전자에게 팬택은 스마트폰 분야에선 ‘시끄러운 이웃’이지만, 부품분야에선 주요 거래선이다. 실제로 팬택은 최근 5년간 삼성전자는 물론 삼성전기, 삼성SDI로부터 액정표시장치(LCD)와 배터리 등 스마트폰 주요부품을 총 8,116억원 어치를 사들였다. 업계 관계자는 “부품에 관한 한 팬택이 삼성전자의 국내 최대 고객일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이번 지분투자는 ‘안정적 거래선 유지’ 성격이 짙다는 게 업계 해석이다.
특히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이 70%에 달하는 상황에서, 자칫 팬택이 흔들리면 삼성전자의 시장지배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고 이 경우 ‘독점화’에 대한 비난여론과 부담도 동반 상승하게 된다. 때문에 삼성전자로선 팬택을 지원하는 것이 ▦상생협력 취지로 보나 ▦거래선 보호측면으로 보나 ▦독점부담 희석 차원으로 보나, 꽤 좋은 베팅이란 평가다.
일각에선 이번 딜의 최대 피해자는 LG전자라는 지적도 나온다. 강정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LG전자로선 삼성의 팬택 지분 인수가 달가울 리 없다”면서 “팬택이 삼성전자를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마케팅과 브랜드 인지도를 강화할 수 있어 2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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