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하는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더욱 가열되고 있다.
이 문제는 지난해 3월 대법원이 각종 수당과 퇴직금 등의 산정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도 포함된다고 판결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각 사업장이 유사 소송을 잇따라 제기해 노사간 쟁점으로 떠올랐으나 정부가 뒷짐만 지고 있다가 양측간 갈등을 키운 것이다.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 방하남 장관이 20일 "노사정 협의로 풀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힌 상태다.
노사 양측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박성식 민주노총 부대변인은 "그 동안 기본급을 묶고 초과노동 수당이나 상여금을 늘리는 방식으로 임금억제와 장시간 노동을 추구해 온 사용자들에게 통상임금 판결은 불법적인 체불임금을 지급하라는 당연한 명령"이라며 "정부와 사측은 현실을 반영한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형준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상여금은 1개월을 초과하는 기간마다 지급되기 때문에 '소정근로시간'에 따라 지급키로 정한 임금(월급제인 경우 1개월)만을 의미하는 통상임금으로 보기 어렵다"며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거치지 않고 판례를 변경했기에 명확한 법리가 형성된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대다수 노동자에 상여금은 고정적 월급 법원 판례 부정하고 압박하는 건 횡포"
● 찬성 박성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부 대변인
원천적 근소세 징수의 대상 등광범위하게 통상임금으로 인식선진국도 일반급에 포함 추세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느냐 안 되느냐 논란 자체가 온당치 않다. 말이 상여금이고 보너스지 상여금은 이미 절대다수 서민과 노동자들의 생계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통상적인 임금이다. 빠듯한 생활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정기적인 상여금은 월급과 다를 바 없는 생계수단인 것이다. 기업 스스로도 채용과정에서 상여금을 고정적인 임금으로 공지하고 있다. 은행이 대출 시 따지는 근로소득에서도 상여금은 통상적인 임금으로 계산되고, 상여금은 원천적인 근로소득세 징수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렇듯 사회는 이미 광범위하게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여기고 있다. 따라서 법원은 생활 현실과 시대상황을 반영하여 1990년 이후 휴가비와 육아수당은 물론,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는 판결을 내려왔다.
그러나 이 엄연한 현실은 방미 중이었던 박근혜 대통령과 미국기업 GM 회장의 어처구니없는 대화로 논란에 빠졌다. 글로벌 '갑'인 미국의 한 기업인이 일국의 대통령에게 자국민의 임금을 희생하고 법의 판결까지 이래라 저래라 한 것은 노동자의 입장을 떠나 용납될 수 없는 모욕이고, 대통령의 화답 또한 매우 굴욕이다. 그날의 면담은 한마디로 글로벌 갑인 미국기업과 한국사회 갑인 재벌기업의 담합이었으며, 이를 위해 대통령이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원칙까지 부정해가며 사법부에 부당한 압력을 가한 위험천만한 장면이었다.
어처구니없는 GM의 요구는 자국의 현실에도 반한다. 미국은 1938년 제정된 공정근로기준법(FLSAㆍThe Fair Labor Standard Act of 1938)을 통해 일반급(통상임금)의 범위를 규정한다. 이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등 기념일을 위한 선물의 성격이라면 일반급에서 제외하지만, 사용자의 재량이나 단체협약에 근거해 당연하게 지급되리라 예상되는 임금은 일반급에 포함한다. 즉, 주기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은 일반급에 포함시킨다. 프랑스도 우리나라처럼 통상임금을 명확히 규정한 법문은 없으나 판례에 의해 통상임금의 범위를 규정하는데, 상여금이나 각종 수당 등 노동자에게 제공하기로 고정된 모든 급여를 임금에 포함시키고 있다. 독일은 아예 높은 기본급을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단순화 했으며, 우리 지식경제부도 2010년 '임금체계 개편 방안에 대한 연구' 보고서에서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모든 급여를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단순화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선진국들은 통상임금에 대한 법률이 명확하진 않더라도 판례에 따라 합리적 관행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미 내려진 법원의 판례를 지키면 될 일이다. 이를 거부하는 사용자들은 불필요한 논란과 소송을 자초하고 있다. 애초 통상임금 논란의 근본원인을 제공한 쪽도 사용자다. 저임금을 무마하려 도입된 상여금은 초기에는 변동적이었지만 이제는 거의 고정급으로 굳어졌다. 그러고도 사용자들은 기본급을 묶어 초과노동 수당이나 상여금을 늘리는 방식으로 임금억제와 장시간노동을 추구해왔다. 그런 사용자들이 이제 와서 또 권력을 통한 압박과 고용을 무기로 통상임금을 축소하려는 것은 횡포가 아닐 수 없다.
통상임금 판결은 불법적인 체불임금을 지급하라는 당연한 명령이다. 그럼에도 전원합의체를 운운하며 대법원을 압박하는 것은, 사실상 범법자의 청탁을 받아 판결을 뒤집으려는 행위나 다름없다. 명분 없다 싶으면 꺼뺨?일자리감소 협박도 그만하기 바란다. 오히려 상여금이 포함된 통상임금과 초과노동 수당증가는 사용자의 초과노동 욕구를 줄이고 일자리를 늘리도록 유도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음을 봐야 한다. 법원판결에 따른 체불수당 지급이 일부 한계기업에 일시적으로 과중한 부담을 지운다면, 정부는 지불능력이 충분한 대기업까지 임금을 떼먹도록 제도적 특혜를 줄 게 아니라, 정책적 자금지원을 통해 노동자와 중소기업을 보호하면 된다. 20년 이상 개선되지 않아 낡은 고용노동부의 통상임금 해석도 차제에 법의 판단과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불필요한 논란을 잠재울 것이다. 그러나 통상임금제도 개악을 전제로 노사정대화를 들이밀며 언론플레이에 나서는 정부의 태도는 매우 개탄스럽다. 장기불황을 벗어나려는 일본처럼 정부가 임금인상 투쟁을 촉구하고 이를 통해 서민경제 활성화를 꾀하지는 못할망정 갑의 횡포니 경제민주화니 할 자격이 한국정부에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기업부담 늘어나 투자·일자리 줄어들 것 대법 전원합의 안 거친 판례변경 부적절"
● 반대 이형준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
근로기준법·노사 관행 등 비춰상여금은 비정기적 소득 의미…중소기업 줄도산 위기 우려도
"지금까지 정부지침을 믿고 따른 잘못밖에 없다. IMF 외환위기도 잘 넘기고 수십 년간 버텨 왔는데, 왜 오락가락한 법원 때문에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하나?"
통상임금 소송중인 모 중소기업 사장의 절규다. 요즘 기업들은 소위 '멘탈붕괴'에 빠져있다. 수십 년간 정부의 지침과 법원의 판례를 믿고 노동조합과 임금을 합의해 왔는데, 작년에 대법원이 이러한 신뢰와 관행을 부정하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법원은 법리변경임에도 불구하고 전원합의체가 아닌 담당 소부에서 판결했다. 명확한 법리가 형성됐다고 보기 어렵다 보니, 하급심에서는 유사한 사건에 대한 상반된 판결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노사정 대타협을 통한 해결 방안을 제시했지만, 이 문제가 협상을 통해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근로기준법 시행령은 통상임금을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한 시간급, 일급, 주급, 월급 금액'이라고 다소 추상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 결과 산업현장에서는 1988년에 정부가 제시한 기준(행정지침)에 따라 임금협약을 체결해 왔다.
또한 현행 시행령 규정을 충실히 해석하더라도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다. 통상임금은 '소정근로시간'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월급제인 경우 1개월)만을 의미하는데, 상여금은 1개월을 초과하는 기간마다 지급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노사 간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노사는 정부지침에 맞춰 회사가 지불할 수 있는 임금총액을 정해놓고 기본급, 상여금, 각종 수당의 인상액을 어떻게 배분할 지 합의해 왔다. 대다수 사업장이 통상임금의 산정범위까지도 합의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의 노동계의 행태는 신의칙에 반한다.
더욱이 법원은 통상임금 산정범위에 대한 노사 간의 합의를 무효라고 하는데, 이는 부당하다. 노사가 대등한 지위에서 통상임금의 기준을 정했다면, 이를 존중하는 것이 '노사자치'라는 노동법 기본질서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합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임금결정에 대한 전체적인 의사를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문제는 통상임금 논란이 비단 법률적 논쟁을 넘어서 국가 경제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점이다.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기업들이 일시에 부담해야 하는 비용만 최소 38조원에 달한다. 2013년 전체 국가예산(342조원)의 10분의 1을 훨씬 넘는규모다.
기업들의 이러한 부담가중은 신규투자를 억제하는 것은 물론, 40만여 개의 일자리 창출여력을 잃게 만드는 규모다. 과도한 부담으로 위기에 직면한 기업들이 노동비용이 낮은 국가로 생산기반을 이전할 우려도 있다. 일각에서는 통상임금 산정범위 확대가 '일자리 나누기'를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연장 근로를 선호하는 새로운 유인으로 작용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중소기업들이 피해를 감당하기 어려워 줄도산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전체 38조원 중 중소기업들의 몫이 14조원이나 된다. 우리나라 제조업 중 중소기업의 비중이 높다 보니, 기업특성상 야근과 특근이 많다. 거기다 대기업처럼 쌓아둔 충당금도 많지 않아 보유 자산을 팔아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마저도 없는 기업들은 문을 닫아야 한다.
이러한 노사 혼란과 경제적 피해의 근본 원인은 모호한 통상임금 규정에 있다. 이러한 점에서 법제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부에 많은 기대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 동안의 신뢰와 관행이 무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와 유사한 노동법체계를 가지고 있는 일본은 '1개월 내에 지급되는 임금'만을 할증임금의 기초임금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관련 분쟁이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학계에서는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거치지 않고 판례를 변경한 잘못을 계속해서 지적하고 있다. 더욱이 법원은 산업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법리를 변경하면서 제대로 된 이유도 제시하지 않았다. 법원이 분쟁의 유발자 역할을 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이제라도 전원합의체가 노사 간의 신뢰와 관행을 고려해 '임금지급기'를 초과하여 지급되는 임금은 통상임금이 아닌 것으로, 통상임금 산정범위를 명확하게 제시해 주길 기대해 본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