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머리에 3면이 둥근 산 모양의 관(冠)을 쓰고 있어 ‘삼산반가사유상’이라고 불린다. 미술사학자 최순우는 이 불상을 “무엇이라 형언할 수 없는 뼈저린 거룩함”이라고 평했다.
‘한국 문화재의 3대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이 불상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전시하려던 국립중앙박물관의 계획이 무산됐다. 국가 지정 문화재 해외 반출 허가권을 가진 변영섭 문화재청장이 지난달 문화재위원회가 내린 반출 허가를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문화재 관련 최고심의기관인 문화재위원회 결정을 문화재청장이 거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문화재청 당국자는 21일 “국립중앙박물관에 조만간 반출 불허 공문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변 청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이 1957~2008년 8차례나 해외로 나갔고 유물 훼손이나 도난 우려가 있다”고 이유를 말했다. 변 청장은 이 자리에서 대안으로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에게 이 불상보다 크기가 10㎝ 정도 작은 국보 제78호 반가사유상(83.2㎝)을 가져가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김 관장이 “대표 전시물로는 좀 작지 않느냐”고 난색을 표하자 “큰 유물 전시를 원한다면 석굴암을 떼어 가 전시하라”고 말했다고 변 청장은 밝혔다.
이 유물을 소장한 국립중앙박물관은 10월 29일부터 내년 2월 23일까지 국보 12점과 보물 14점 등을 포함하는 ‘황금의 나라, 신라’특별전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열 계획이다. 전시는 메트로폴리탄박물관장이 2001년 한국에서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을 본 뒤 전시 유치 의사를 밝히면서 추진됐다. 박물관은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릴 좋은 기회로 여겨 국보 제83호를 포함한 26점의 국가지정 문화재 해외 전시를 문화재청에 요청했다. 문화재위원회는 대량 장기 반출이라는 점 때문에 고민하다가 ‘향후 장기 반출 자제’를 조건으로 달아 이를 허가했지만 문화재청장이 그 결정을 뒤집어버린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진 뒤 문화재계에서는 차제에 문화재 해외 반출에 대한 ‘가이드 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는 “26점이나 되는 국가지정 문화재가 대량으로 그것도 장기간 해외로 나가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국보급 문화재의 해외 반출을 몇 점 이하로 제한하는 등 ‘가이드 라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문화재위원은 “해외 전시 일정이 촉박해 국보급 문화재의 해외 반출을 어쩔 수 없이 허락해 준 경우도 없지 않았다”며 “앞으로 문화재의 해외 전시는 적어도 1년 이상 여유를 갖고 심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문화재위원은 “일부에서는 국보급 문화재의 해외 반출을 제한하자고 주장하지만,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지 않은 문화재 가운데 국보급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국보나 보물이 아닌 중요 유물을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오영찬 이화여대 교수는 “문화재의 해외 전시를 둘러싼 논쟁은 현행 제도가 미비해서 생긴다기보다 문화재위원회 운영의 묘를 살리면 해결될 문제”라며 “문화재청이 60년 넘게 운영돼 온 전문가 집단인 문화재위원회의 의사 결정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제교류재단의 한 관계자는 “문화재 해외 전시로 파손 위험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품격 높은 문화재를 해외에 많이 보내 한국이 문화 선진국임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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