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야 정치권 인사들의 발걸음이 두 곳의 빈소로 확연히 갈렸다. 야권 인사들은 지난 17일 별세한 박영숙 전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의 빈소가 차려진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향한 반면, 여권 인사들이 찾은 곳은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남덕우 전 국무총리의 빈소. 공교롭게 비슷한 시기에 타계한 두 고인에 대한 조문 행렬을 통해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간의 거리감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풍경이다.
두 고인을 향한 여야 정치권의 반응도 '애도 물결'과 '무덤덤한 무관심'으로 갈렸다.'여성 운동계의 대모'로 불리며 여성 운동과 시민운동에 족적을 남기고 정치권에서도 활동했던 박 전 이사장이 타계하자 민주당은 공식 애도 논평을 내고 김한길 대표 등 주요 당직자 뿐만 아니라 상당수 의원들이 빈소를 찾았다. 야권 성향의 여성단체와 시민단체 인사들의 애도 메시지도 SNS 등에서 줄을 이었다. 20일 열린 영결식에 추도사를 낭독한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문재인 민주당 의원, 안철수 무소속 의원, 한명숙 전 총리 등 야권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새누리당은 간단한 애도 논평을 내고 당 대변인 명의의 조화를 보내긴 했으나 빈소를 찾는 주요 당직자는 없었다.
반면 18일 타계한 남 전 총리의 빈소 풍경은 180도 달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을 이끌어 '한강의 기적' 주역으로 불린 그의 빈소에는 여권과 재계 인사 등의 조문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20일에도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이명박 전 대통령, 이회창 전 총리 등이 조문했다. 그러나 민주당에선 특별한 애도 논평이 없었고 빈소를 찾는 인사도 없었다. 사실상 '침묵'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남 전 총리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없다 보니 조문 인사도 없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반된 풍경은 각각 민주화와 산업화에 주력했던 고인의 생전 인연을 보여주는 것이긴 하지만, 정치권이 상대 진영 거물급 인사를 배려하지 않고 인색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일각에서는 정치권의 추모 문화 자체가 지나치게 정치화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5ㆍ18 기념식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여부나 지난해 대선 당시 문재인 대선 후보의 선별적 묘역 참배를 두고 벌어진 논란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19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김한길 대표는 '친노' 성향의 일부 추모객들로부터 욕설을 듣고 멱살을 잡히는 등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여야 정치권이나 지지자들이 추모 행위에 지나치게 정치적 상징성을 부여해 불필요한 논란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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