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인도 국가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G.P.마투르 전 대법관은 “성폭행 당한 여성이 성폭행범과 결혼하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고 언급해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이 회의는 지난해 말 한 인도 여대생이 심야버스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해 숨지자 성범죄를 줄이고 여성을 보호하는 방안을 찾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마투르 전 대법관은 “성폭행 피해자와 가족이 공개 재판에 회부돼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절충안”이라고 설명했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잇단 성범죄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진 인도에서 성감수성이 없는 사법부가 성범죄 근절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실제로 마투르 전 대법관은 WSJ 인터뷰에서 “피해 여성의 증언을 판사가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도 문제”라며 “결혼하거나 성관계 경험이 있는 성인 여성이 남성을 상대로 성폭행 혐의를 제기하기는 매우 쉽다”고 법원의 분위기를 전했다.
법원이 성폭행 피해자의 증언을 거짓으로 판단, 용의자에게 무죄 판결을 하는 경우도 많다. 델리 주법원은 2011년 “여성이 긴 손톱을 갖고 있으면 가해 남성 성기를 할퀴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에는 용의자 성기에 상처가 없는 것으로 보아 성관계가 평화롭게 이뤄졌을 것”이라며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므리날 사티쉬 인도국립법대 교수는 “법적 근거가 아니라 사회적 편견을 판결에 적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법원이 의학적 증거를 판단하는데 참고하는 이라는 책은 2011년 개정판이 나오기 전까지 “평범한 상황에서라면 남성 한 명이 건강한 성인 여성의 의지에 반해 성교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명시했을 정도다.
베드 쿠마리 델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90년대 중반까지 우리 학교에서는 성폭행 관련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며 “교육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쿠마리 교수는 “내가 25년 전 교수가 된 후 성폭행 관련 법을 교과 과정에 포함시키는 것을 추진했고 당시 한 남성 교수는 강의를 거부했다”고 회고했다.
WSJ는 “1990년대 후반 판사 중 48%가 ‘남편이 때때로 아내를 때리는 것이 정당화할 수 있다’고 응답한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된 후에야 이런 분위기가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당시 한 비영리단체는 판사들과 성범죄 피해자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성감수성 훈련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인도 정부 법률 자문인 변호사 인디라 자이싱은 “판사들이 성적 편견을 판결에 적용했는지 여부를 판단해 인사의 척도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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