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혼과 강제결혼 등으로 고통받는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기본권을 확대하기 위한 여권신장법안이 의회 비준에 실패했다. 여성 인권을 강화하기 위해 의회 상정을 강행했지만 도리어 법안이 폐기될 가능성마저 나오고 있다.
아프간 하원은 18일 이슬람 교리를 중시하는 보수 성향 의원들의 반대로 ‘여성에 대한 폭력방지법’ 비준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이날 15분간의 짧은 토론에서 보수파 의원들은 해당 법안이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고 여성의 혼외정사를 부추긴다며 일부 조항을 수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법안을 수정하기 위해 별도의 위원회가 꾸려질 예정이지만 재상정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 법안은 2009년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의 법령에 따라 마련됐다. 법안에는 여성 조혼과 강제결혼, 빚을 갚기 위해 여성을 사고파는 관습인 ‘바드’ 등을 금지하는 내용과 성폭력 및 가정폭력 가해자에게 최대 3년형을 언도하는 조항이 포함돼있다.
법 제정을 주도한 파지아 쿠피 의원 등은 대통령 법령으로는 여권 보호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보고 정식 입법을 추진했다. 유엔 조사에 따르면 2010, 11년 대통령 법령 위반으로 기소된 2,299건 중 처벌건수는 150여건(4%)에 불과했다. 쿠피 의원은 “내년 4월 대선에서 당선되는 차기 대통령이 이슬람 세력의 지지를 얻기 위해 대통령 법령을 폐기하거나 수정할 가능성이 높다”며 법안 마련의 배경을 설명했다. 내년 미군 철군 후 이슬람 세력의 재집권으로 여권이 탄압받을 수 있다는 것도 쿠피 의원 등이 법안 마련을 서두른 이유다.
하지만 전체 의원의 25%를 차지하는 여성의원 중 일부도 법안에 반대하면서 비준을 받는데 실패했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 조제트 개그넌 아프간지부장은 “명예살인에 대한 정의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출한 여성의 처벌 등과 관련한 구체적 조항이 명시돼 있지 않다”고 아쉬워했고 인권단체 관계자도 “자신의 딸을 일찍 결혼시키거나 아내를 때린 사람들이 자신이 감옥에 가야 할 지도 모르는 법을 통과시키겠느냐”며 아프간의 현실을 지적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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