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현석동의 '이너프 살롱(enough salon)'이란 가게는 매주 주인이 바뀐다. 얼핏 카페처럼 보이는 26㎡ 남짓의 이 아늑한 공간은 때에 따라 미술 강습소, 벼룩시장, 갤러리, 베이커리 등으로 변신한다. 매장을 여는 사람도 작가, 주부, 대학교수, 대기업 임원 등 다양하다.
무한 변신이 가능한 건 무언가 팔고 싶은 게 있거나 나누고 싶은 게 있다면 한 달에 최대 5일간 대관료 없이 빌리고, 판매수익의 30%를 운영자인 김정은(34ㆍ여)씨에게 지불하면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청소 아줌마'라고 소개한 김씨는 "처음엔 운영 방식이 어려워서 망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지만, 사람들이 꾸준하게 찾아와 건물 월세 낼 정도는 된다"고 말했다.
이너프 살롱이 처음 문을 연 건 2010년 4월 서울 이태원에서 운영하던 갤러리를 회현동으로 옮긴 뒤 갤러리 내 음악감상실을 현석동에 마련하면서다. "그림을 사려는 고객을 만나다 보니까 은퇴 후 커피숍을 운영하거나, 회사 그만두고 캠핑 가고 싶다는 등 꿈꾸는 것이 다양했어요. 전문가처럼 꼭 준비하기보다 현 여건으로도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막연히 꿈만 꾸던 소심한 필부필부들이 일탈을 감행했다. 2010년에는 30대 세 자매가 네일숍과 카페, 티셔츠 매장을 한 번에 열었는데 은행원인 맏언니가 1,000∼2,000원의 싼 가격만 받고 평소 취미인 손톱관리를 전문기구까지 동원해 해주자 손님이 줄 서 기다릴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반면 스파게티, 카레 등 음식점에 도전했다가 '맛이 없다'는 소문이 퍼져 별 재미를 못 본 이들도 있다. 피겨동호회 바자, 심심한 사람들이 영화를 핑계로 모여 라면을 먹는 '라면 영화제' 등 재미난 행사도 열린다. 지난 14일부터는 생태전문 1인 출판사 '그물코출판사'의 전시회가 열려 저녁에는 책을 읽고 손님들과 간이 토론회를 벌이고 있다.
김씨는 "입구에 쓰인 '지금 이 순간 당신이 가진 것으로도 충분합니다'는 글귀가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라며 "무언가 팔 게 있고, 오는 손님을 막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공간을 쓸 수 있다"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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