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취임 6개월을 맞으면서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삐걱거리고 있다. 도쿄(東京)신문은 17일 아베 총리의 의도와 달리 양국 관계에 역풍이 불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민당이 재집권하면 민주당 정권이 망가뜨린 미일관계를 회복하겠다"며 의욕을 보이던 아베 총리는 2월 워싱턴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미일관계가 완전 회복됐다"고 선언할 정도로 미일동맹에 집착했다. 하지만 이후 이어진 아베 총리의 지나친 우경화 행보는 양국 관계를 불안하게 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국회에서 왜곡된 역사인식 발언을 줄줄이 내놓으며 미국을 당황스럽게 했고 미국에 알리지 않은 채 측근인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내각관방 참여를 북한에 보내는 외교 결례를 범했다. 7월 참의원 선거 이후 아베 총리가 추진할 헌법 개정의 중요 파트너로 여겨지는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일본유신회 대표의 위안부 정당화 발언과 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비난 성명도 양국 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이 때문에 미일관계가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 시절로 역행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009년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취임한 하토야마 전 총리는 2006년 미일 양국이 합의한 오키나와 후텐마 공군기지 이전을 백지화해 미국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하토야마는 자위대원을 아프가니스탄에 파견해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무시하고 자민당 정권 당시 체결한 핵 밀약문서를 공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미국을 긴장시켰다. 당시 미 행정부가 하토야마 정권을 반미정권으로 분류할 정도였다.
반면 아베 정권은 왜곡된 역사인식으로 미일관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 와타베 유지 도쿄재단 수석연구원은 "하토야마 정권이 한중 양국과 지나치게 가까웠다면 아베 정권은 너무 나빠서 문제"라며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뒤 역사인식에 대한 지론을 더 강조할 경우 동아시아의 안정을 원하는 미국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베 총리는 2007년 총리 시절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다"는 각의 결정으로 미국의 거센 비판을 받은 뒤 사퇴했다. 하루카 미키오(春名幹男) 와세다대 객원교수는 "재집권 후에는 역사인식 문제에서 안전 운행할 것으로 보았던 기대가 완전히 어긋났다"며 "미국 정부에 조셉 윤 등 한국계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어 아베 정권이 유리한 환경을 만들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이지마 참여를 비밀리에 방북시킨 것도 미일관계가 삐걱거리는 증거라는 주장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요구한 아베 총리가 일본인 납치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한국ㆍ미국과의 공조를 깨뜨리고 독자 행동에 나선 것은 미국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북한에 갔던 이지마 참여는 3박4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17일 귀환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긴 시간 진지하게 회담할 수 있었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 아베 총리 망언
-"(태평양전쟁 책임자들을 처벌한 극동국제군사재판에 대해) 승자의 판단에 따른 단죄다" (2013년 3월 12일)
-"한일 간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의 영유권에 관한 문제가 있으며 다케시마는 역사적 사실이나 국제법상 명백히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일본 정부의 입장은 일관돼 있다" (2013년 4월 5일 외교청서)
-"(식민지배와 침략을 사과하는 내용이 포함된)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지 않겠다" (2013년 4월 22일)
-"침략의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2013년 4월 23일)
-"(신사참배와 관련) 우리 각료는 (한국, 중국의)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다. 숭고한 영령들에게 존경의 뜻을 표할 자유를 확보해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13년 4월 24일)
"(한국, 중국이) 야스쿠니의 영령에 명복을 비는 것을 비판하는 것에 마음 아파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다" (2013년 4월 24일)
- "(침략의 정의 규정한 1974년 유엔총회 결의에 대해) 안보리가 침략행위를 판단할 때 참고로 삼기 위한 것이다. 침략의 정의에 대해선 학계에서 다양한 논의가 있으며 결정된 바는 없다" (2013년 5월 8일)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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