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아르헨티나 민주화 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더러운 전쟁'의 주범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전 대통령이 17일 사망했다. 향년 87세.
아르헨티나 TV 방송 C5N은 인권탄압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 받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비델라가 이날 옥중에서 고령으로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비델라는 1974년 이사벨 페론 대통령 사망 후 국정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 76년 군사 쿠데타로 집권했다. 그는 77년부터 3년간 좌익 게릴라를 척결한다는 명분 하에 '더러운 전쟁'을 주도, 인권 및 노동 운동가 등 반대 세력을 잔혹하게 탄압했다.
아르헨티나 당국은 당시 희생자를 8,000~1만명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인권단체들은 3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아르헨티나 곳곳에 설치된 600여 곳의 비밀수용소에 갇혀 고문 당한 뒤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델라의 군사정권은 남미 지역의 좌파 인사 색출을 위해 벌인 '콘도르 작전'에도 참여했다. 콘도르 작전은 75년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칠레,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 남미 6개국 군사정권 정보기관 책임자들의 공조로 이뤄진 대대적인 반체제 인사 숙청 사건이다. 이들은 겉으로는 좌익 게릴라 세력 척결을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민주화를 외치는 운동가와 지식인들을 무차별적로 납치하고 살해했다. 당시 이 작전으로 인해 10만여 명이 사망하고 40만여 명이 고문을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81년 비델라가 퇴임한 후 군부 독재자들에 대한 처벌 요구가 빗발쳤으나 군사정권 마지막 집권자인 레이날도 비뇨네가 83년 하야 직전 '더러운 전쟁에 참가한 모든 군인을 사면한다'는 사면법을 제정하는 바람에 처벌은 흐지부지됐다. 그러나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2003∼2007년 집권)이 사면법을 전격 취소하고 나서 2006년부터 처벌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비델라는 2010년부터 열린 재판을 통해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이후 가톨릭 사제 살해와 정치범 아기 강제 입양 등 다양한 혐의가 추가됐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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