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1년까지 국내 곡물 소비량의 35%를 '자주개발(自主開發)'하겠다고 추진 중인 해외농업개발 사업이 겉돌고 있다.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국내는 물론이고 주요 곡물 생산국 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데다, 투자국과의 협의 부족과 효율적 수송통로가 확보되지 않아 글로벌 식량위기가 닥칠 경우 해외 생산 물량을 국내 반입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7일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러시아, 몽골, 인도네시아 등 24개국에 총 106개의 해외 농업기지(6만4,360㏊)가 건설됐으나, 이들 기지의 생산성이 국제 평균의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주로 러시아와 몽골에 들어선 밀 농장의 ㏊당 생산량은 1.7톤으로 국내(3.6톤)는 물론이고 미국 농가 평균(3.1톤)의 54%에 불과하다. 해외 농장의 콩(1.0톤/㏊)과 옥수수(4.0톤/㏊) 생산효율도 미국(콩 2.7톤/㏊ㆍ옥수수 7.7톤/㏊)에 크게 뒤진다. 효율성만 놓고 보면, 국제 곡물시장이 안정 상태를 유지할 경우 해외에서 생산할 수록 손해라는 얘기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가격을 불문하고 식량자원 확보가 절실한 곡물파동 시기에 해외기지 물량의 국내 반입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 정부 관계자는 "현재 확보한 생산기지 대부분이 민간 협력을 통해 이뤄졌다"며 "해당 국가가 유사시 현지 생산 물량의 한국행을 공식적으로 보장하거나 양해한 사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한ㆍ러 경제협력 차원의 일환으로 연해주에 대규모 농장을 세우는 계획이 논의되고 있지만, 이 역시 생산 물량의 한국행을 러시아 정부가 보장해줄지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24개국에 산재한 해외 생산기지에서 곡물을 반입하는 구체적 계획과 수송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지난해 해외 농장에서 확보된 17만톤 곡물 중 1만539톤만 반입됐는데, 낮은 생산성과 수송과정의 비효율이 겹치면서 평상시 곡물메이저를 통해 확보한 것보다 2, 3배 가량의 비용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에서 확보한 식량 자원을 신속히 반입할 수 있는 해상 운송계획과 운송수단의 확보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최근 내놓은 '해외농업개발 확보곡물의 비상시 해상운송방안' 논문에서 "곡물운송에 적합한 5,000~1만톤급 컨테이너선을 비상시에 즉각 투입할 수 있도록 정부가 선박회사들과 사전에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비상시 즉각 수송이 이뤄지도록 곡물 도입조건에 대해 해외 개발사업자와 관련기관이 사전에 합의안을 미리 도출해 놓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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