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미진 골목의 포장마차 주인은 밤새 영업해봐야 기껏 두세 테이블 더 받는 게 고작인데도 자리를 지킨다. 차라리 가게 문을 닫고 일찍 들어가 잠이라도 푹 자는 게 나을 것 같지만, 심야 영업을 하는 이유는 당장 돈이 나올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자원이나 재화를 이용해 생산이나 소비를 했을 경우 다른 것을 생산하거나 소비했었다면 얻을 수 있었던 잠재적 이익인 기회비용이니 뭐니 하는 경제학 이론은 여기에 끼어들 틈이 없다. 이게 바로 노동의 현실이다.
류동민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은 숫자나 개념으로 환원되는 노동에 숨결을 불어 넣은 한국 노동 현실 보고서다. 경제원론에는 노동자만 있을 뿐 개개인의 맨얼굴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노동자는 숫자나 개념이 아니라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부양할 가족이 있는 하나하나의 인격체다.
책은 현실 속의 노동을 끄집어 내 구체적인 모습을 펼친다. 힘든 노동의 대가를 모아 아들의 어학연수 비용을 댄 식당 아주머니나 내일부터 나올 필요 없다는 통고를 문자메시지로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 후미진 위성도시에서 만원버스에 올라타기 위해 뛰어야 하는 직장인, 하루 백여 군데를 돌아다녀야 겨우 일당을 맞추는 택배기사 등 숱한 노동자들이 책의 주인공이다.
추상적인 개념으로는 환원할 수 없는 삶의 개별성에 주목한 이 책은 더 간단한 고용과 해고를 뜻하는 '노동시장 유연화'나 임금삭감이나 근무시간 연장을 가리키는 '경영 효율성 제고' 등을 거론하며 그런 경제학 교과서 같은 세상은 없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고소득층이 부유해지고 나야 그 이익이 아래로 넘쳐 전체로 확산된다는 흘러내림 효과(tickle-down)는 결국 허구이고, 실제로는 이익이 위로 빨아올려지는 현상(trickle-up)대로 작동한다고 말한다. 지입제로 일을 하는 택배기사, 식품회사 영업직원, 택시기사 등의 수익구조만 봐도 고용주의 위험부담은 최소화하고 위험과 고통은 노동자에 전가되는 현재의 시스템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불공정한 상황을 개선할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노동이 가지는 의미를 확인하고 함께 살아가자는 논의를 다시 한번 되풀이할 뿐이다. 그래서 소비자로서의 정체성과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이 맞설 때 가끔씩이라도 노동자의 정체성을 의식하도록 노력하는 작은 톨레랑스(관용)로라도 세상을 바꾸자는 결론에 허탈함을 감추지 못할 사람도 적지 않을 듯 하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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