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을 빼곡히 수놓은 연등과 대형 전통등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한국 여행의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부처님 오신 날(17일)을 이틀 앞둔 15일 밤 서울 강남의 대표적 사찰인 삼성동 봉은사에 어둠이 깔리자 경내를 장식한 형형색색의 전통등과 연등에 일제히 불이 켜졌다. 화려한 분위기에 이끌린 관광객들의 발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이날 봉은사에는 외국인 방문객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봉은사는 이들을 위해 절 초입에 외국인 전용부스를 마련하고 외국어 자원봉사단을 배치해 안내하고 있다. 영어, 중국어, 일어 등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학생들이 외국인들에게 전통등과 연등의 의미를 설명하고 즉석 폴라로이드 사진도 촬영해줬다.
배낭여행 중 코엑스 등 강남지역을 둘러보다 해지는 시간에 맞춰 봉은사를 찾았다는 벨기에 출신 라이젠(27)씨 커플은 전래동화 '은혜갚은 까치'를 형상화한 전통등을 보고 "목숨을 구해준 선비의 은혜를 갚으려 까치가 종에 머리를 부딪혀 죽었다는 이야기가 감동적"이라며 "전체 스토리를 꼭 읽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라이젠씨는 자원봉사자가 이 등을 배경으로 찍어준 폴라로이드 사진을 소중히 가방에 넣었다.
업무차 한국을 방문해 봉은사 인근 호텔에 묵고 있다는 네덜란드인 엔지니어 마이클(35)씨는 "수많은 등이 불을 밝힌 광경이 너무 아름다워 내려와봤다"면서 "스리랑카, 인도의 절에 비해 한국 절엔 등의 수가 훨씬 많고 국가적인 축제 분위기가 나는 이유가 궁금했었는데, 자원봉사자들로부터 한국은 대중의 구원을 중시한 대승불교가 성행한 반면 남아시아는 개인적인 깨달음을 추구하는 소승불교가 전파돼 발생한 차이라는 설명을 듣고 이해됐다"고 말했다.
봉은사 이명희 사회팀장은 "지난 3일 전래동화와 전통놀이를 표현한 대형등 40여점을 전시한 전통등축제가 시작되면서 외국인 관광객이 평소보다 10배 이상 늘었다"며 "전통등에 담긴 전래동화 뒷얘기나 연등이 가진 의미 등을 외국인에게 설명함으로써 단순한 감상을 넘어 한국 전통문화와 불교문화를 알리려는 취지에서 봉사단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 김혜영(동국대 국제통상학과4)씨는 "화려한 등의 모습에 감탄하던 외국인들이 설명을 듣고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갖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한 마음이 든다"고 전했다.
외국인 중에는 연등을 직접 달기 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국전쟁 때 전사한 삼촌할아버지(어머니의 삼촌)의 자취를 찾으러 어머니와 방한했다는 아일랜드인 타이라(38)씨도 이날 등을 신청했다. 그는 "연등에 기원의 의미가 담겼다는 설명을 듣고 삼촌할아버지의 명복과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등을 달았다"고 말했다.
봉은사 관계자는 "외국인들에게 세상에 지혜를 밝히는 것이 연등을 다는 근본적인 의미라고 설명하지만 대부분은 가족의 안녕을 기원한다"면서 "서양인들도 가까운 이들의 건강과 행복을 비는 한국인들과 정서가 비슷한 점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송은미기자 mys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