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은 신용카드 보험 증권 등 금융사를 선택할 때 금융당국이 매긴 민원 처리 등급을 참고한다. 1등급을 받았다고 하면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소중히 생각하는 회사로 여기고, 5등급으로 받은 회사는 그 반대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등급을 산정하는 방식이 구조적으로 특정 회사에 유리하게 돼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등급만 공시하고 항목별 점수를 공개하지 않는 점도 등급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하는 부분이다.
15일 금융감독원 및 금융업계에 따르면 신용카드사의 민원발생평가는 카드 이용액 일조원당 민원건수와 전체 회원 수 백만 명당 민원건수를 바탕으로 산출되고 있다. 문제는 전체 회원 수에 체크카드 회원 수를 포함시키는 데서 발생한다. 체크카드 특성상 민원이 거의 없기 때문에 체크카드 회원의 비중이 높은 카드사들은 상대적으로 민원이 적게 발생하는 것처럼 나타난다.
카드 관련 민원은 대부분이 부가서비스 축소, 연체, 연회비 등에 대한 불만으로, 신용카드와 비교해 제휴나 부가서비스가 적은 체크카드는 민원이 발생할 소지가 거의 없다. 통장에 있는 돈이 나가는 거라 연체도 있을 수 없고, 연회비도 없다.
매년 평가를 실시하고 있는 금융감독원은 이런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제도 유지를 위해 일부 불공정한 부분은 감내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금감원 관계자는 "체크카드 관련 민원이 거의 없어 특정 카드사에 유리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관련 평가를 수정하려면 각 업계에서 다양한 요청이 쏟아질 것 같아 쉽게 손을 대기 어렵다"고 답했다.
등급만 발표하고 세부적인 점수를 공개하지 않는 점도 논란거리다. 현재는 민원처리 기간을 중시하기 때문에 부당한 요구든 아니든 평가를 잘 받기 위해 해결만 빨리 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실제 지난해 민원이 전년동기대비 20% 가까이 급증한 한 회사가 이번 평가에서 최상위 등급을 받았고 비슷한 수준으로 민원이 증가한 회사들은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 평가가 엇갈렸는지 알 길이 없다. 자료를 외부에 공개한 적이 없고, 단지 카드사들이 민감해 한다는 이유로 금감원은 항목별 점수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현재는 금감원이 민원을 접수 받아 금융사에 해결하라고 종용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금융사가 민원 발생에 대한 근원적 처방을 내리기보다 빨리 해결하는 데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런 불공정한 잣대는 증권업계에도 존재한다. 고객예탁자산 십조원당 민원건수를 통해 등급을 내는데, 대형사의 경우 민원 발생 소지가 없는 기업 오너들이 맡긴 주식 지분이 고객예탁자산에 잡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민원이 없는 듯한 '착시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한 중소형 증권사 관계자는 "소액을 투자하는 회원을 다수 확보한 증권사는 자산 규모가 작은데 회원 수는 많아 평가에서 불리하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줄 세우기 위한 지표가 아니라 금융사가 민원 해결을 위해 제대로 노력하고 있는 지를 평가하려면 보다 정교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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