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협박해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남편에 형법상 강간죄를 적용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혼에 합의하는 등 실질적 부부 관계가 금간 경우에 일부 인정된 판례는 있어도 정상적으로 혼인이 유지된 상태에서 인정된 것은 처음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부인을 흉기로 위협해 성관계를 맺은 혐의(특수강간 등)로 기소된 김모(45)씨에 징역 3년6월에 정보공개 7년, 전자 발찌 부착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씨와 변호인 측은 부부 관계의 특수성을 들어 반발하면서, 부부 강간이 인정되면 부부 사이의 감정적 보복 수단으로 악용돼 가정 파탄을 부추긴다는 우려를 내세웠지만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지극히 당연한 판결이고, 오히려 지금까지 부부 관계를 이유로 강간죄를 인정하는 대신 강요죄나 폭행죄, 협박죄 등으로 다스려 오던 관행을 바꾸는 데 이리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는 현행 형법의 강간죄(297조) 조항 어디에도 부부 사이를 다른 남녀 관계와 달리 다루어야 할 이유가 없다. 형법 개정에 따라 6월19일부터 '사람'으로 바뀔 '부녀'를 굳이 '아내를 빼고'로 해석할 까닭이 무엇인가. 더욱이 강간죄가 기본적으로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부수적으로 신체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강압적 성행위가 부부 사이라고 범죄를 구성하지 않을 수 없다. 부부 관계는 기껏해야 정상 참작의 대상일 뿐이었다. 더욱이 민법 826조는 부부의 동거 의무를 두면서도 '정상적 이유로 일시적으로 동거하지 않는 경우에는 용인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비록 배우자라 하더라도 정상적 사유의 성적 거부는 존중돼야지, 묵살할 게 아니다. 그런데도 법원은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낡은 법언(法諺)에 묶여 그 동안 머뭇거려 왔을 뿐이다.
늦게나마 법원이 고식적 태도를 바꾼 것을 환영한다. 아울러 이번 판결이 남성 배우자들의 경각심, 나아가 부부 사이의 기본적 예의와 절제의 필요성을 일깨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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