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 미국유학지에서의 경험이다. 교육학 세미나 시간에 담당교수가 미국신문에 난 기사를 들고 강의실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요즘 한국이란 나라에서는 과외공부를 시키는 대학생들을 경찰이 단속하고, 그들 부모를 세무당국이 단속한다는데 그것이 사실이냐"고 내게 물었다. 전두환정권 초기 '과외공부금지령'이 내려진 시점이었다. 그 교수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미국에서는 공부하지 않는 학생들 때문에 고민인데, 한국에서는 정부기관이 나서서 공부하는 학생, 공부시키는 대학생, 그리고 학부모를 단속한다는 점이었다.
대한민국에서의 사교육 문제는 비단 어느 특정 정권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사교육 부담을 줄이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달콤한 선거공약은 역대 대선후보들의 단골 메뉴였고, 역대 정권들 가운데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하지 않았던 정권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 어느 정부도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사교육을 촉발하는 일선학교 현장의 선행학습과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는 물론 특목고나 대학입시 등에서 교과서 밖 출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정책을 약속했다. 이의 실현을 위해 지난 달 국회에서도 '공교육 정상화 촉진에 관한 특별법안'이 발의됐다.
물론 선행학습의 폐해나 이를 금지하는 이유는 상당부분 설득력을 지니기도 한다. 사교육을 촉발하고 공교육을 황폐화시키며 가계에 부담을 준다는 점. 그리고 선행학습이 학생들의 학업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는 점은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다. 그래서 70% 이상의 학부모들이 선행학습 금지를 찬성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정작 이 정책이 성공할 것이라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아 보이질 않는다. 주변 많은 사람들의 입장은 원론적 찬성을 하면서도 '배움'과 '가르침'을 법으로 규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찬성은 하지만 성공할 것 같지는 않다'는 참으로 묘한 사회여론이 감돌고 있는 것이다.
왜일까? 우리 인간에게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식을 잘 가르쳐 보다 나은 삶을 보장해 주려는 기본 욕구가 자리해 있다. 요즘 학생들의 꿈은 영어를 잘해서 '싸이'처럼 옥스퍼드대학이나 하버드대학에서 초청강의를 해봤으면 하는 것이고, 요즘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훗날 박근혜 대통령처럼 유창한 영어로 미국 의사당에서 연설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꿈을 꾸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사회의 대다수 구성원들이 학교교육만으로 그리고 교과서의 내용만으로 그런 꿈이 이뤄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인의 능력과 수준에 따른 배움의 욕구와 보다 많은 것을 가르치려는 교사의 열정을 법규로 규제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 어느 누구도 남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도, 보장해 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대의 축이 대한민국 교과서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교육 선진국으로 손꼽히고 있는 유럽 여러 나라들의 공통점은 저렴한 대학등록금에도 불구하고 대학진학률이 낮고, 일류대학에 대한 집착 또한 우리네처럼 높지가 않다는 점이다. 그들 학교에서는 동일학년의 학생들을 수준별로 나누어 가르침으로써 선행학습의 논란 자체를 근본적으로 잠재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네 교육체제는 평준화 학교들에 선행(?)해 특수목적고와 자율고 등이 상위권 학생들을 선점하고, 교과목 편성과 운영의 자율권마저 제도적으로 보장받고 있어 평준화 학교들과의 공정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 학교의 교육수준을 평준화 학교들에 맞춰 하향조정을 요구 할 필요는 없다. 지금 정부가 의지를 갖고 추진하는 공교육정상화의 착한 정책이 성공을 거두려면, 교과서에 충실한 평준화 고등학교 학생들이 대학입시에서 과학고, 외고 등의 특목고 학생들과 형평에 맞는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착한 대학입시'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착한 대학입시가 선행되면 대통령과 국회가 나서지 않아도 일선 학교현장에 선행학습이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오성삼 송도고 교장ㆍ전 건국대교육대학원장
오성삼 송도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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