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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ㄱ과 ㅅ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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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ㄱ과 ㅅ 사이

입력
2013.05.16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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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도로가 경부소속도로로 둔갑한 건 컴퓨터 자판 때문이라는 걸 며칠 전에 말했다. ㄱ의 옆에 ㅅ이 있어 자칫하면 실수를 하기 쉽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경부소속도로라고 쓴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렇게 틀리게 지도에 표기한 음식점만 뭐라고 할 일도 아닌 것 같다.

ㄱ과 ㅅ 사이에 뭐가 있어서 그럴까? ㄱ과 ㅅ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골프장에서 흔히 하는 농담, “그린과 그린 사이에 뭐가 있나?” “그린과 그린 사이에는 ‘과’가 있지.” 하는 말을 그대로 본떠 말하자면 ㄱ과 ㅅ 사이에는 토씨 ‘과’가 있을 뿐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대부분 느낀 일이겠지만, ㄱ과 ㅅ은 진짜 많이 쓰이는 글자다. 온갖 사물의 이름이나 추상명사, 인명 등에 이 글자가 나온다. 많이 쓰는 글자일수록 실수의 빈도도 자연히 높아진다. 방귀가 잦으면 응가가 나오고 말이 많으면 실수를 하게 되고 남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는 이치와 같다.

기자들이 종이 대신 컴퓨터로 글을 쓰기 시작한 20여 년 전의 일이다. 경북 출신의 한 사회부 기자가 자기가 쓴 글을 읽다가 “어라? 컴퓨터도 사투리를 하네?” 그랬다. 지가 자판을 잘못 누른 건 모르고. 아니, 알면서도 한번 그렇게 말한 거겠지. 으와 어를 어지간히도 헷갈리던 그는 엘리베이터를 엘리베이트, 에스컬레이터를 에스컬레이트로 쓰기 일쑤였다. “오늘도 걷는다마는”(보행)을 “오늘도 긋는다마는”(외상)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이니 쓰는 것도 자연히 그렇게 된다.

그런데 문화부 여기자 한 명은 ‘학생’을 ‘학갱’이라고 쓰고, 민망하게시리 ‘반바지’를 ‘반자지’라고 쓴 기사를 부장에게 넘겼다가 혼이 났다. ㅂ 옆에 ㅈ이 있어 빚어진 실수였다. 원래 글을 쓰면서 오자를 많이 내는 기자여서 선배들은 그 다음부터 그 여기자의 글을 한층 더 의심을 품고 읽곤 했다.

ㄱ과 ㅅ을 바꿔치면 아주 엉뚱한 말이 돼버린다. 감나무는 삼나무가 되고 군대는 순대, 미련곰퉁이는 미련솜퉁이, 갈치는 살치, 고사리는 소가리(이게 무슨 말이지? 쏘가리는 있지만)로 변한다. 새신랑은 개신랑, 새색시도 개색시, 새싹도 개싹, 새조개도 개조개, 세발낙지도 게발낙지, 새주둥이도 개주둥이, 개구멍은 새구멍이 되고 개는 새가 되어 훨훨 날아간다. 멀쩡하게 살아 있는 산 사람도 억울하게 간 사람이 돼버린다. 금방 죽을 것처럼 골골하는데 어디서 솔솔 솔바람이 불어온다.

그런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눈앞에 삼삼한 그녀의 얼굴도 감감해져 버리고김삿갓은 김갓삿, 아니면 아예 성을 갈아 심삿갓이나 심갓삿이 될 수도 있다. 오랜 봉사활동(자원봉사는 아니지만) 끝에 성공한 심봉사나 그의 딸 심청이도 김봉사, 김청이로 변해 버린다. 훤칠하고 믿음직한 사위는) 가위가 된다. 싱글벙글 웃는 것도 잘못하면 깅글벙글 웃게 되니 그 얼굴이 좀 징그럽지 않을까? 그러니 ㄱ과 ㅅ이 이어질 때는 늘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이건 왜 이렇게 된 걸까. 문자 메시지 보내는 걸 처음 배운 남편이 “여보 사랑해.”라고 하려다가 “여보 사망해.”라고 잘못 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건 이상한 일이다. 아시다시피 보시다시피 컴퓨터 자판의 위에서 세 번째 열은 왼쪽부터 ㅁ ㄴ ㅇ ㄹ ㅎ, 이런 순서로 돼 있다. 그러니 ㄹ을 ㅁ으로 잘못 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아내에게 사망하라고 써 보냈다면, 그렇다면 이건 혹시 속마음이 드러난 건 아닐까? 헐!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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