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불어 닥친 북유럽 디자인 열풍이 이번에는 한국의 주방을 바꿔놓고 있다. 편안하고 심플한 디자인에 실용성까지 갖춘 북유럽 그릇이 가구, 소품 등 인테리어에 이어 또 한 번 '스칸디나비아 스타일'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일조량이 적어 추운 북유럽은 화려한 색감을 가진 포근한 디자인의 고향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물고기, 나뭇잎, 동물, 기하학적 무늬 등을 디자인에 접목해 자연의 색감과 정취가 녹아있는 간결하면서도 독특한 미감을 구현한 게 특징이다.
유행을 타지 않고 내구성도 좋아 실용적인 측면을 따지는 깐깐한 주부들에게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얇아서 깨질까 전전긍긍하며 손님 올 때만 잠깐씩 꺼내 쓰는 여느 수입제품들과 달리 스톤웨어 재질 제품이 많아 전자레인지, 오븐, 식기세척기에 넣어도 안심이다. 진열장에 처박아 두기 십상인 여느 그릇과 달리 두루두루 활용도가 높다.
디자인강국 북유럽 국가의 그릇들은 해외 쇼핑몰이나 센스 있는 주부들의 블로그 등 인터넷을 통해 소개되면서 백화점에까지 입점했다. 강렬한 색감이 돋보이는 대표적 북유럽 그릇 브랜드 '이딸라'는 국내 14개 백화점에 매장을 꾸리며 시장을 넓히고 있다. 최근 신세계 강남점에서는 특별전을 열어 그릇 브랜드로는 드물게 1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수입업체인 선우실업 김오일 부장은 "처음 이딸라가 한국에 들어 온 건 10년쯤 되지만 최근 찾는 이들이 급격히 늘었다"며 지난해의 경우 전년 대비 100% 이상 판매가 늘었다고 전했다.
핀란드 그릇 '아라비아 핀란드' '마리메꼬', 스웨덴의 '로스트란드'를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입점해 있는 '스칸'이나 양재동 '이노메싸' 등에 들르면 북유럽 스타일의 소품과 패브릭 제품들을 살 수 있다. 덴마크 브랜드 '라이스'도 최근 국내에서 편집매장과 인터넷 쇼핑몰 판매를 시작했다.
사실 커다랗고 알록달록한 또는 기하학적인 패턴의 시원스러운 모양은 한식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꽃무늬 등 잔잔한 패턴에 질린 주부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최근에는 혼수시장까지 넘본다. 혼수 그릇은 밥그릇, 국그릇, 접시 등으로 구성된 6인, 8인 세트가 기본이었지만 요즘은 필요한 식기만 준비하고 나머지 접시, 샐러드 볼, 우동그릇 등은 특색 있는 제품을 골라 채우는 경향으로 바뀌면서 수요가 늘고 있다.
리빙 에디터 성정아씨는 "원색인 노랑, 주황, 밝은 녹색 같은 한국 그릇에서 잘 쓰이지 않는 색이기 때문에 칙칙한 주방에 소품 몇 개만 들여 놓아도 인테리어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백색 그릇 위주인 한식 밥상에서 패턴이 화려하거나 색감이 강한 접시에 메인 요리를 담으면 다른 그릇들과 어울리면서도 포인트가 된다. 성씨는 "최근 도자기보다 싸고 가벼운 멜라민 소재로 된 제품들도 수입되는 등 선택 폭이 더 넓어졌다"며 다양한 식기로 특별한 세트를 꾸미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에 자리한 폴란드 그릇가게 '노바'를 운영하는 박영신씨는 "무게감이나 두께감이 있는데도 보온, 보냉 효과가 탁월하다는 입소문을 듣고 주부들이 꾸준히 찾고 있다"고 말했다. 중부 유럽 국가인 폴란드는 북부와 남부의 느낌이 섞여 있는 게 특징으로 핸드메이드 제품이 많다. 박씨는 "양식 스타일의 그릇도 활용하기 나름"이라며 "자신만의 세팅을 해보는 것은 또다른 즐거움"이라고 덧붙였다. 양식 사기 주전자에 막걸리를 담는다거나, 파스타 접시에 불고기나 떡볶이를 담아내는 식으로 응용해도 훌륭히 어울린다는 얘기다.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북유럽 그릇은 화려하고 풍부한 색상의 패브릭 식탁보에 차려내면 더욱 빛난다. 깔끔한 흰색, 파스텔톤의 린넨 식탁보도 좋지만 보색 대비를 노린 강렬한 원색 또는 커다란 무늬가 들어간 식탁보를 활용한다면 센스 만점의 식탁을 차려낼 수 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