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남북관계는 '기싸움'이 정점에 달했다. 마침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왔던 개성공단마저 잠정폐쇄되었다. 착공 10년 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부가 보인 태도는 실망스러웠다. 전략적 고려 없이 즉흥적으로 대응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통일부 장관이 대화제의에 확신 없는 태도를 보이자 밤늦게 대통령이 직접 나서 '북한과 대화할 것'이라고 수정하는 모양이나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실무회담을 제의하면서 하루의 답변시간을 주고 회담을 거부하면 '중대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전제를 단 것 등이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의 감성적 보도 경향과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감도 일조를 했다.
금강산 관광 중단, 5.24 조치에 이은 개성공단의 잠정폐쇄는 기능주의적 접근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는 남북관계가 단순히 70년대로 돌아가고 만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분단체제가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관계를 우리의 주도적 노력 하에 풀어나가려는 동력이 과거처럼 우리 내부에서 강하게 생겨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현 단계에서 남북관계의 조기 정상화는 분명 쉽지 않은 과제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핵심은 신뢰이다. 개성공단 잠정폐쇄에 이르기까지 남북 쌍방 사이에 오간 말들로 미루어 볼 때 상대방에 대한 인식은 적대와 대결 외에 다른 표현을 찾기 어렵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가동도 하기 전에 동력을 잃고 남북관계는 장기 경색국면으로 가게 될 것이다. 엊그제 박대통령은 개성공단의 완제품 반출을 위한 대화를 제의했다. 정부의 세 번째 제안이지만 대화 제의의 시점이나 내용으로 미루어 북한이 이를 수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신뢰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얻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화해 협력정책이 어려운 것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성공을 거두려면 치밀하고 포괄적인 틀을 만들고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정부 내 어디에서 누군가는 이 일을 갖고 씨름을 해야 한다. 당연히 통일부의 임무이다. 통일부가 이 일을 앞장서 주도해나가지 않으면 존재의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뭔가 한반도 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지켜 본 사람들에게는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면서도 대화의 문은 항상 열어 놓는 대북정책을 추구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한다면 언제든 대화의 문이 열려있다"고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이끌어 나가기로 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대화의 가능성을 닫기보다는 오히려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하기에 따라 금번 한미정상회담은 남북관계 전환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두 달 남짓 밖에 되지 않았고 남북 긴장이 한껏 고조된 상황으로 인해 애초부터 구체적인 합의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큰 방향의 틀에 대한 합의에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양국 간의 후속협의나 조치가 더욱 중요해지게 되었다.
북한도 정상회담 기간 내내 침묵을 지키며 한미정상회담을 지켜보다가 지난 10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이 나서 이번 정상회담을 '전쟁의 전주곡'으로 비난하면서도 "인내심을 갖고 주시하고 있다"고 남북대화의 가능성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한미는 대화를 강조했고 북한은 남한 하기에 달렸다는 것으로 되받았다.
이제 해야 할 일은 한미간 합의의 틀 속에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계획이 도출될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머지않아 한중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여기서는 개성공단을 포괄하는 보다 큰 틀에서 우리의 적극적인 이니셔티브가 나와야 한다.
이봉조 극동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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