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국격 훼손' 성추행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그야말로 하늘 끝에 닿았다. "당장 미국으로 돌려보내라"는 요구는 약과다. '거세' 또는 '사형' 시키라는 막말까지 인터넷에 떠돈다. 국민 자존심에 큰 흠집을 낸 인물에 대한 거친 정의감의 표현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마냥 개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통령의 사과를 계기로, 그에 대한 정부의 조치를 차분히 되돌아보는 게 좋겠다.
■ 무엇보다 그가 경찰 조사를 피해 도망치듯 귀국한 경위를 둘러싼 책임 논란은 애초 초점이 빗나갔다. 미 국무부와의 협의설이 뒤늦게 나오지만, 외교 상식과 관행에 비춰 처음부터 그리 볼 일이었다. 미 국무부는 경찰 등 사법기관과 외교관 면책특권 관련 사건을 처리하는 핫라인을 24시간 가동한다고 한다. 윤창중은 외교관 신분은 아니었지만, 미국은 관용여권을 지닌 외국 고위 관리에게 사실상의 면책특권을 인정한다. 더구나 그는 최고위 외교관인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었다.
■ 그런 만큼 미 국무부는 경찰이 '경범죄'로 분류한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는 게 여러모로 적절하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당사자가 워싱턴에 남아 경찰 조사를 받으면 오히려 문제가 복잡해진다. 해외 외교 인력이 많은 미국은 면책특권 인정에 너그러운 편이다. 상호주의 원칙 때문이다. 또 면책특권은 개인이 아니라 소속 국가에 부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윤창중의 귀국도 당연히 우리 외교 당국과 협의를 거쳤을 것이다.
■ 굳이 비슷한 선례를 찾으면, 워싱턴 주재 사우디 외교관이 13세 미국 소녀로 위장한 경찰관과 인터넷 채팅으로 성관계를 약속하고 만났다가 체포된 적이 있다. 경찰은 면책특권을 내세운 용의자를 풀어줬으나 국무부가 대사관에 통보, 사우디 측은 당사자를 해임하고 귀국시켰다. 반면 음주운전치사 등 중범죄는 면책특권 포기를 파견국에 요구, 사법처리한 사례들도 있다. 이런저런 점들을 고려한다면, 윤창중의 귀국 경위는 상호 국익을 위한 외교의 영역으로 보고 헤아릴 만하다.
강병태 논설고문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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