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지난달 12일 민주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장·차관급 낙마 사태와 관련해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한 이후로 취임 이후 두 번째 사과다.
하지만 공식석상에서의 첫 사과인데다 표현의 강도도 훨씬 셌다. '송구', '진심으로 사과', '적극 협조' 등의 용어가 사용됐다. 유감표명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 보다 훨씬 더 나아간 것이다. 사실상의 첫 대국민 사과로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이 그만큼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사건은 출범 초 인사난맥 등으로 우왕좌왕 하던 박근혜정부가 '이제야 제 궤도를 찾았다'는 평가가 나오던 시점에 터져 나왔다. 박 대통령이나 정권 수뇌부로선 그만큼 충격파가 클 수밖에 없다. 바닥에서 상승하던 지지율 추이가 다시 꺾여버리면 재상승을 기약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번 사건을 두고 "박근혜 정권 초유의 위기 상황"이란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날 박 대통령의 강도 높은 사과는 이 같은 위기 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에 따라 이번 사건을 "국민과 나라에 중대한 과오를 범한 일"이라고 규정짓고 철저한 조사와 응당한 책임을 강조했다. 아울러 공직기강 재확립도 약속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미국 측의 수사에도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말해 윤 전 대변인이 미국으로 출두해 조사를 받도록 할 생각임을 내비쳤다. 이와 관련 김행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현재 윤 전 대변인이 미국에 출두하는 것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 전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달렸다"며 "만약 피해자가 한국 수사기관에 고소할 경우 한국에서도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응당한 책임'은 당사자인 윤 전 대변인에 그칠 것 같지 않다. 이남기 홍보수석은 처음 사건 보고를 받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성추행 가해자로 의심받는 윤 전 대변인의 귀국을 종용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대통령에 대한 보고도 사건 발생 인지 후 28시간이 지나서야 이뤄짐으로써 파문을 키웠다. 귀국 후에도 부적절한 사과 등 아마추어리즘으로 일관했다.
때문에 박 대통령이 이날 "관련 수석들도 모두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은 실상 이 수석의 사의를 수리하겠다는 뜻이란 해석이 나왔다. 아울러 일부 책임자들의 경질을 비롯한 추가적인 인적 쇄신 작업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청와대 직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기강 확립 작업에도 나설 것이라고 다짐했다. 허태열 비서실장도 이날 '비서실 직원에게 보내는 당부의 글'을 통해 "다시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느 누구라도 책임지고 물러난다는 단단한 마음가짐을 갖고 임하라"고 공직기강 확립을 촉구했다. 허 실장은 또 "민정수석실은 이번 방미단과 전 방미 일정을 리뷰하라"며 "그것을 바탕으로 매뉴얼을 만들어 향후 대통령이 중국 등 해외순방을 나갈 때 그 매뉴얼에 따라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하라"고 지시했다.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