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낮 12시 30분 서울 은평구 진관동 북한산국립공원 문턱의 북한산초등학교. 전교생이 147명밖에 안 되는 작은 학교다. 점심을 먹고 뛰어 놀기 바쁜 시간에 30여명의 학생들이 강당으로 뛰어들어왔다. 숨을 가다듬은 아이들은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꼬부랑…" 노래를 시작했다. 노래하랴, 율동하랴, 그 와중에 장난치고 웃으랴 정신이 없다. 개교 46년 만에 처음 생긴 합창단이 바꿔 놓은 이 학교의 점심시간 풍경이다.
"소프라노! 이 부분에선 더 힘차게 쭉 올려볼까?" 선생님은 아이들 앞에서 연신 흥을 돋운다. 합창단을 만들어 이끌고 있는 선생님은 이 학교 신입생의 학부모이자 재즈 가수로 활동 중인 말로(42)다.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말로는 3월 학부모 초청 공개수업을 참관하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컴퓨터로 튼 전자반주에 맞춰 노래방에서 가사 따라 부르듯 동요를 배우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이다. 말로는 "아이들에게 노래를 부르면서 얼마나 즐거울 수 있는지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바로 합창단이었다.
말로는 곧 교장을 찾아 재능기부로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겠다고 제안했다. "처음엔 웬 아줌마가 와서 합창단을 만들겠다고 하나 의아했다"는 이도갑(53) 교장은 나중에야 말로가 유명한 재즈 가수라는 사실을 알고 제안의 의도를 이해했다고 말한다. 넉넉지 않은 예산에 130만원을 쪼개 중고 피아노까지 마련해줬다. 3월 한 달동안 3~6학년 100여명의 전 학생이 오디션을 치러 이 중 30여명이 합창단에 뽑혔다.
합창단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바뀐 건 아이들이다. 일주일에 2, 3번 점심시간을 쪼개 연습을 해야 해서 "밥을 허겁지겁 먹어야 된다" "놀 시간이 없다"고 투덜대면서도 "노래하는 게 제일 좋다"고 입을 모은다. 김민규(10)군은 "우리들 목소리가 하나가 돼서 아름다운 화음의 노래가 된다는 게 신기하다"며 "합창 연습하는 날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합창단은 꾸려지자마자 6월 15일에 열리는 지역 축제인 '숲 속 음악회' 무대에 서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첫 연습곡은 말로가 직접 편곡한 '꼬부랑 할머니'와 '작은 별'이다. 하지만 말로는 "이 합창단의 목표가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는 건 절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제 초등학생인데, 벌써부터 경쟁으로 내모는 건 아니잖아요. 같이 놀면서 웃으면서 노래하는 그 시간을 통해 아이들이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만큼 소중한 게 어디 있겠어요. 제 개인적으로는 6년 동안 쭉 합창단을 맡는 게 목표라면 목표지요."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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