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슬람 성향의 나와즈 샤리프 전 파키스탄 총리가 11일 치러진 총선을 통해 재집권하게 되면서 새 정부의 대미정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샤리프는 선거에 앞서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발을 빼겠다"고 했고 미국이 테러조직으로 규정한 무장반군 파키스탄탈레반(TTP)과 협상할 뜻을 밝혀 미국을 긴장시켰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선결 과제가 경제난 해소인 만큼 샤리프 정부가 미국에 협조하면서 경제 원조를 얻는 전략적 동맹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내년 말로 예정된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완전 철수는 미국과 파키스탄 관계의 향방을 가늠할 시금석이다. 미군은 아프간과 인접한 파키스탄의 영토를 거쳐 남동부 카라치항(港)을 통해 장비를 철수할 계획이다. 원활한 철군을 위해서는 파키스탄 정부가 북서부 국경지대를 근거지로 삼고 아프간 탈레반과 공조하고 있는 TTP를 통제해줘야 한다. 샤리프 정부가 공약을 이유로 협조를 거부한다면 미군의 아프간 철군은 난관에 부닥친다.
미국의 무인폭격기(드론) 사용도 현안이 될 전망이다. 드론을 활용한 테러조직 요인 암살로 대테러전쟁 전략을 수정한 미국은 파키스탄에 드론 기지를 설치하고 아프간, 예멘 등에서 소탕 작전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파키스탄은 자국 민간인이나 군인의 오폭 피해를 들어 자주 불만을 표시해왔다.
샤리프의 과거 두 차례 총리 재임기(1990~93, 1997~99)에 주목하는 이들은 새 정부가 반미ㆍ민족주의 노선에 기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샤리프는 이웃 국가이자 앙숙인 인도의 핵실험에 맞서 1998년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제재를 무릅쓰고 핵실험을 강행했고 미국이 아프간 탈레반 정권을 인정하도록 설득했다. 탈레반과의 협상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미군 철수 이후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의 평화협상 중재에 나서 지분을 확보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양국 협력 관계가 지속될 것으로 점치는 쪽은 파키스탄이 미국으로부터 얻는 이득을 거론한다. 미국은 2001년 9ㆍ11 테러 이후 대테러 전쟁 협력 대가로 파키스탄에 연평균 18억달러(2조원)의 군사 및 경제원조를 제공했다. 2009년부터는 경제원조를 연 15억달러로 크게 늘려 지원하는 대신 탈레반과의 관계 단절을 요구하고 있다. 7% 대였던 경제성장률이 수년째 2~4%에 머물고 만성적 전력 부족에 시달리는 파키스탄으로서는 거부하기 힘든 요구다. 군부가 탈레반과의 협상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것도 새 정부의 부담이다. 현지 정치 전문가 아흐메드 빌랄 메흐붑은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와의 인터뷰에서 "총선에서 누가 승리했더라도 대미관계가 크게 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샤리프는 12일 연정 구성에 착수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미국은 파키스탄 새 정부와 동등한 파트너로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