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모 방송국의 뉴스 프로그램에서 그동안 출판계에서 일어나던 사재기를 이용한 베스트셀러 조작을 밝혀 일파만파가 일어났다. 해당 출판사 대표는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할 정도였다. 방송에서 한집에서 백여 권의 같은 책을 반복해서 주문한 사람이 있어 취재진이 찾아갔다. 허름한 시골의 주택이었고 노인이 살고 있고 자신은 책을 잘 보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 많은 수의 책을, 그것도 같은 책을 쌓아 놓고 남에게 선물할 만해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다른 사람은 선배가 아이디를 알려 주면 공짜로 책을 보내 주겠다고 해서 한 달에 서너 권의 책을 받고 있는데, 어떨 때는 같은 책이 여러 번 온다며 취재진에게 보여 줬다. 대형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은 같은 아이디로 여러 권을 주문하지 못하게 하고, 대량주문이 판매지수에 포함되지 않게 하지만, 출판사는 산정방식을 알아내서 교묘하게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낸단다. 대중의 기대치가 높은 저자의 책일수록 반짝 사재기가 실제 판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임은 분명하나, 이런 방법만큼 투자대비 효과가 분명한 것이 없으니 한 번 효과를 본 출판사 입장에서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이게 그 출판사만의 일이 아니란 후문이다.
몇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고, 또 최근에 한 권을 쓴 저자의 한 사람으로서 사재기라는 현상은 남의 일로만 볼 수 없었다. 그동안 내 책이 베스트셀러가 안된 것은 오직 양심적인 출판사와 일을 해 온 덕분이라는 자기합리화와 결국 공정한 경쟁을 하지 못했다는 속상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 솔직히 사재기라도 해서 책이 많이 팔렸다면 좋았겠다는 유혹적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
남의 일로 볼 때에는 옳지 않지만 막상 당사자가 된다고 보면 편법이라도 이득의 수혜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택시가 난폭운전을 하고 끼어들기를 하는 걸 볼 땐 화가 나지만, 막상 택시를 탔을 때에는 신호가 바뀔 때 통과를 바라고, 흐름을 끊어서라도 최대한 빨리 목적지에 데려다 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한편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 비판적인 사람들도 자기 자식의 공부를 위해서는 사교육을 시키고, 숙제를 대신해 준다. 내 애가 뒤떨어지는 것의 두려움이 공공적 당위성을 이긴다.
혼자 지조를 지키고 원칙론을 고수하는 것은 좋은데,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변칙적 방법으로 손쉽게 빠른 길을 가버린다면 더 이상 원칙을 고수하는 게 어려워진다. 옳은 길을 가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매번 손해를 볼 수 만은 없고, 그러고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각박하고 경쟁이 치열하다.
사재기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변칙적 패스트 트랙에 대한 유혹, 공리를 해치는 사적 이득의 이기적 취득의 욕망의 하나다. 이런 방식은 한 개인에게는 이득이 될지 모르나, 사회 전체의 시스템을 병들게 하고, 결국 그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를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그것도 정말 큰일이 곧 날 것이라는 절박한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그래야만 모두가 서로를 감시하면서, 또 자신을 다독이면서 빠르고 효율적으로 보이나 판을 어지럽히는 반칙적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
넓은 잔디밭을 가로지르면 빨리 갈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가로질러서 잔디가 죽은 길이 보이면 사람들은 별 부담 없이 펜스를 넘어갈 것이다. 그러나, 보는 사람이 없다 해도 잔디가 파랗게 잘 보존되어 있다면 감히 빠른 길이라 해도 갈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유혹을 이기는 것은 개인의 의지에만 맡기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면서 정도를 지키는 자가 소수가 되면 손해가 막심하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건강을 위해 보이지 않는 강력한 감정적 공감대와 상호감시에 대한 인식이 함께 해야만 한다. 사재기도, 택시의 난폭운전도, 숙제와 사교육도 다 한 맥락임을 깨닫자. 사회적 경고등이 켜진 징후가 여기저기서 보인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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