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참모들이 윤창중 전 대변인 성추행 의혹 사건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늑장 보고했다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청와대가 미국 워싱턴 현지에서 성추행 사건을 처음 인지한 이후 박 대통령에게 첫 보고를 하기까지는 28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를 두고 "청와대가 박 대통령의 심기 경호에 급급했거나, 방미 성과가 가려지는 것을 지나치게 걱정해 제대로 대처할 타이밍을 놓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초유의 사태… 대통령에겐 "쉬쉬"
박 대통령의 방미 일정을 수행한 청와대 실무진이 워싱턴 주재 한국문화원장으로부터 성추행 사건을 처음 보고 받은 것은 8일 오전 8시 전후였다. 실무진은 윤 전 대변인을 상대로 1차로 진위 여부를 조사했고, 오전 9시30분쯤 이남기 홍보수석에게 보고했다. 이 수석은 국내의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사건 내용을 조용히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사이 윤 전 대변인은 몰래 공항으로 가 오후 1시35분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8일 오전 박 대통령은 수행 경제인과의 조찬간담회와 미 의회 상ㆍ하원 합동연설 등의 일정을 소화하고 오후 3시5분 로스앤젤레스(LA) 행 전용기에 올랐다. 박 대통령은 이 때까지 워싱턴에서 그런 사단이 벌어진 것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격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초대형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워싱턴_LA 간 비행 시간인 5시간 내내 이 수석 등이 입을 닫고 있었다는 것은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최영진 주미 한국대사가 미 국무부가 성추행 사건 수사 협조를 요청한 사실을 오후 3,4시쯤 외교안보수식실에 보고하는 등 당시 청와대 전체에 비상등이 켜진 상태였다는 사실은 의혹을 더욱 짙게 한다.
대통령은 몰랐던 28시간… 늑장 대응
이 수석이 LA에서 박 대통령에게 사건 관련 첫번째 보고를 한 시각은 9일 오전 9시10분. 박 대통령은 보고를 받자 마자 윤 전 대변인은 경질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이 수석은 한국시간으로 10일 새벽 2시55분인 오전 10시55분 긴급 브리핑을 갖고 윤 전 대변인 경질을 발표했다. 청와대가 전날 사건을 인지한 이후 30시간이나 지난 뒤였다.
박 대통령이 보고받은 시점은 윤 전 대변인이 한국에 도착한 시간보다도 늦다. 민정수석실은 한국시간으로 9일 오후 5시10분(현지시간 9일 오전 1시10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윤 전 대변인을 곧바로 조사했고, 성추행이 맞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측은 이에 대해 "한국행 비행기에 타고 있었던 윤 전 대변인을 조사할 방법이 없어 시간이 걸린 것"이라며 "사건 파악이 정확하게 돼야 보고할 수 있는 것이지, 중대한 사건에 대해 대통령에게 찔끔찔끔 보고할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이 수석이 6,7시간을 더 기다린 것은 박 대통령의 취침 시간을 배려한 게 아니냐는 해명성 추측도 뒤따랐다.
하지만 지각 보고와 관련해서는 의혹이 잇따르고 있다. 일각에선 "청와대가 중간에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긴 했으나, 사건 내용을 축소해서 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청와대가 대통령에 대한 보고를 미루면서 대책 마련이 지연된 것은 결과적으로 "청와대가 사건을 은폐하려 한 게 아니냐", "청와대가 엉뚱한 '셀프 사과'를 하는 등 위기관리를 못하는 게 아니냐" 등 추가 논란을 낳았다. 박 대통령이 더 큰 부담을 떠안게 된 셈이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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