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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 껴안은 마당극… 일본 객석도 껴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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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 껴안은 마당극… 일본 객석도 껴안다

입력
2013.05.1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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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에서 느꼈던 한국 무대의 힘을 새삼 확인했다. 한국과 일본의 유사성에서 출발해 화합으로 이끌어 내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도쿄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연극저작권 대행 회사인 하라 인터내셔널의 마틴 네일러(62) 회장이 말했다. 한일 합작 연극 '아시아 온천'을 본 소감이다. 일본 신국립극장과 한국의 국립극단, 예술의전당이 함께 만든 이 작품이 처음 선 보인 10일, 도쿄의 신국립극장 중극장에는 밤 늦게까지 한일 연극인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앞서 2008년 한일 합작 연극으로 올라간 재일동포 연극인 정의신의 '야끼니꾸 드래곤'이 양국에서 거둔 매진 기록은 이 날도 재연됐다. 1ㆍ2부로 나뉘어 3시간 동안 이어진 공연에서 800석을 가득 메운 일본 관객들은 볼거리와 들을거리로 충만한 무대에 매료돼, 휴식 시간에도 대부분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아끼니꾸 드래곤'이 정의신 작ㆍ연출이었던 데 비해 이번 작품은 정의신이 쓰고 연출은 국립극단 예술감독 손진책이 맡았다. 무대가 볼거리로 넘치는 이유다.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섬 마을에 온천 개발을 노리는 도시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충돌이 시작된다. 대대로 내려온 사탕수수밭을 지키려는 마을 원로(김진태 분), 땅을 매입해 사업을 하려는 외지 사람(일본 배우) 등 두 세력의 갈등이 주축이다. 개발업자 측 청년과 마을의 처녀가 몰래 정분을 쌓아 가다 결국 자살을 택함으로써 사람들을 깨우치게 한다는 구도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케 한다.

무대와 객석이 구분되는 연극에 익숙한 일본 관객들이지만 한국식 마당의 열린 구조에 선뜻 빠져들었다. 수박 장수, 각설이, 공사판 인부 등으로 분한 배우들이 펼치는 재담이 객석의 의식을 붙든다. 휴식 후 제 2막이 시작할 때는 배우들이 뒤에서 객석 사이로 걸어 내려오며 "시작"이라 외친 후 굿거리 장단에 맞춰 관객들과 간단히 수작을 주고 받는다. 손진책이 그의 극단 미추를 통해 꾸준히 실험해 온 마당극 어법이 여전히 관통한다. 굿판의 잽이들처럼, 동서양 악기를 잡은 두 무리 연주자가 라이브 음악으로 무대와 긴밀히 조응한다.

무대는 거대한 굿판이다. 암전이 거의 없어 배우나 연주자들의 움직임이 그대로 노출된다. 일본 국립극단 배우 키토 노리코(42)는 "정의신의 리얼리즘적 텍스트와 손진책의 마당놀이 어법이 만나 전례 없던 작품을 만들어냈다"며 "특히 객석과 직접 호흡하는 대목은 일본 연극과 가장 큰 차이"라고 말했다.

극장은 그래서 샤머니즘의 기운으로 충만하다. 무대 꼭대기 중심에서 늘어뜨려 바닥까지닿는 긴 무명천은 무당이 나와 굿을 펼칠 때는 극장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변한다. 북방 아시아 지역의 샤머니즘에서 보편화된 '우주의 나무'의 연극적 변형인 셈이다. 마을 어른(김진태 분)이 "손에 피 냄새가 진동한다"며 준비하는 큰 굿판은 이 무대의 논리적 귀결이다.

이 작품은 26일까지 도쿄 신국립극장에서 공연하고, 6월 11~16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으로 와서 한국과 새 만남을 갖는다.

도쿄=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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