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책방을 운영하며 가끔 엄마와 저녁 먹는 게 전부인 마흔둘의 독신남 K. 빨간 목도리를 한 아이가 목을 졸리며 아이들에게 괴롭힘 당하는 걸 목격하지만 모르는 체 했는데, 어느날부턴가 그 아이가 책방을 찾아온다. 그리고 함께 복수하자는 열여섯 아이의 황당한 제안을 K는 선뜻 받아들인다. K 역시 어린 시절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었고 지금도 동네 정육점 주인 저팔계에게 부림을 당하는 터였다.
둘이 펼치는 복수극은 찌질하지만 사뭇 진지하다. 개새, 빙닭, 거지독사, 부반장년에게 뒤통수 후려치기, 욕 종합 12종 세트 발사, 그 아이네 빵집 케이크에 쥐 꼬리 넣기, 애로배우 사진에 얼굴 합성하기를 실행하는 두 왕따의 발버둥이 너무 처절해서 웃음기를 가시게 한다. 문체는 경쾌하지만 어쩐지 웃을 수 없는 건 작가가 창조해 낸 인물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오기 때문이다.
복수에 나서는 빨간 목도리는 사실 K의 분신이다. 복수의 대상 역시 아이를 괴롭힌 이들이 아니라 그에게 원한을 남긴 이들이었다. 만화책 캔디를 보고 눈물을 찔끔거렸다고 얻은 별명은 '캔디', 인진의 심부름을 맡은 세 번째 인물이라고 불려진 별칭 '3호'가 그의 이름을 대신한다. 그의 진짜 이름은 갈등이 해소되는 작품의 말미에서야 밝혀진다. 반전을 위한 치밀한 구성과 흡입력 있는 문체까지 흠 잡을 데 없는 작품이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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