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전산망을 해킹, 현금인출기(ATM)에서 4,500만달러(500억원)를 인출한 일당이 미국에서 붙잡혔다. ATM에서 돈을 빼낸 인출책만도 수 천명에 이르는 이 사건을 언론은 '사상 최대의 현금인출기 범죄'라고 보도했다.
뉴욕 연방검찰은 9일 이번 사건과 관련해 뉴욕 일대에서 조직책으로 활동한 20대 남성 7명을 금융사기 공모 및 돈세탁 등의 혐의로 체포했다. 검찰은 국제적 범죄집단과 연루된 이들이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 두 차례에 걸쳐 뉴욕의 ATM에서 240만달러(26억원)를 빼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범죄는 해커들이 아랍에미리트(UAE)의 라카뱅크와 오만의 뱅크오브무스캇 등 은행 2곳의 전산망을 해킹, 계좌정보를 알아내고 인출한도를 없애면 세계 26개국의 현지 인출책들이 해킹된 은행의 ATM에서 동시에 돈을 찾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체포된 20대 용의자들은 인출책으로 보인다"며 "해커 등 핵심 용의자에 관한 수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첫 범죄가 발생한 라카뱅크에서는 500만달러(55억원)가, 2월 뱅크오브무스캇에서는 4,000만달러(442억원)가 각각 빠져나갔다. 뉴욕 연방검찰은 "해커들이 상대적으로 보안 시스템이 취약한 중동 은행을 노린 것 같다"고 밝혔다. 인출책들이 ATM을 통해 돈을 뽑아간 26개국에는 미국, 캐나다, 일본, 러시아, 이집트, 스리랑카 등이 포함됐다.
해커들은 예치 금액이 적고 입출금 정보에 민감한 개인계좌는 건드리지 않은 대신 한번의 해킹으로 많은 돈을 빼갈 수 있는 법인계좌 등을 노렸다. 해커들은 해킹을 통해 계좌정보를 얻은 뒤 이를 낡은 카드 열쇠에서부터 기한이 만료된 신용카드까지 수천장의 마그네틱 카드에 입력해 국제우편 등을 통해 인출책에게 배달했다. WP는 "보안에 취약한 마그네틱형 카드를 하루빨리 집적회로(IC) 카드로 전환해야 해킹을 차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달 도미니카공화국에서 현금 10만달러(1억1,000만원)가 든 여행용 가방과 함께 20대 남성 라후드 페냐가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에도 주목하고 있다. 페냐는 검거된 용의자 7명의 인출조직을 이끈 우두머리로 인출한 돈의 세탁을 주도했다.
로레타 린치 뉴욕 연방 검사는 "검거된 7명은 모두 도미니카 출신의 미국 시민권자로 교도소 동기"라면서 "징역 10년 이상을 구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확보한 단서를 근거로 12개국 수사기관과 공조해 전 세계에 퍼진 인출책과 해커를 검거할 계획이다.
WP는 "30년 전 미국에서 ATM 범죄가 처음 발생한 이래 피해액 측면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고 밝혔다. 2008년 미국의 ATM 범죄 피해액은 10억달러에 이른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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