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조사는 미국 워싱턴 경찰국이 진행하고 있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성추행이 친고죄이기 때문에 한국 사법당국이 사건에 개입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 시민권자인 B씨가 미국 당국에 신고한 상황에서 한국의 수사기관에까지 고소해 재차 조사를 받을지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본보가 입수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경찰은 B씨의 진술을 받고 현장조사도 이미 마친 것으로 보인다. 조사보고서는 B씨의 엉덩이를 만진 것 이외의 신체 접촉은 언급하지 않았다. 워싱턴 경찰국도 9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사건을 ‘경범죄성 성추행(Misdemeanor Sexual Abuse)’으로 규정했다. 이런 경범죄는 조사 기간이 짧고 징역형 대신 벌금형이 내려지며 사회봉사와 교육 등이 함께 부과된다.
물론 나중에 중한 범죄로 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워싱턴의 김원근 변호사는 “사건의 성격이 피의자에게 불리하게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경범죄는 피의자가 혐의를 부인해도 체포하지 않은 채 조사를 진행한다. 결국 윤 전 대변인이 한국으로 도피성 귀국을 한 것이 도리어 사건을 키웠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윤 전 대변인이 한국으로 도피하는 바람에 직접 조사가 어려워졌다는데 있다. 워싱턴 경찰이 윤 전 대변인에게 소환장을 발부하고 주미 한국대사관에 송달을 요청할 수는 있다. 하지만 경범죄는 시간과 비용 등 여러 문제로 실제 송달이 이뤄지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미국이 요청할 경우 한국 수사기관이 윤 전 대변인을 대리 조사해 그 결과를 미국에 알리는 방법도 있지만 이 역시 가능성은 낮다. 윤 전 대변인이 소환에 응하지 않으면 워싱턴 경찰은 피해자 조사와 확보된 증거를 토대로 법원에 기소한 뒤 체포영장을 발부 받을 수 있다. 그 다음 한미 범죄인인도협정에 따라 한국 정부에 신변 인도를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범죄인 인도는 징역 1년 이상의 중범죄자에 해당한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미국이 윤 전 대변인의 인도를 요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워싱턴 경찰은 기소를 하지 않은 채 윤 전 대변인을 형식적 소환 상태로 놔두는 선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한미 당국은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경범죄 사안이지만 파장이 워낙 큰 데다 외교문제까지 얽혀 사건의 처리를 질질 끄는 것은 한국과 미국 모두 원치 않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윤 전 대변인이 미국으로 건너가 경찰에 출두, 조사를 받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뉴욕 검사 출신인 정홍균 변호사는 “한국 정부가 윤 전 대변인을 미국에 다시 보내 사건을 매듭짓는 것이 법률적으로는 물론 정치ㆍ외교적으로도 현명하다“고 말했다. 국내 법조계 인사도 “형사 절차에 따른 해결이 최우선이겠지만 외교 문제로 매듭짓는 방법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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