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통일을 이루어야 할 두 지도자가 있다. 바로 대만(타이완)의 마잉주(馬英九) 총통과 지난 2월 25일 취임한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다. 두 사람은 나이가 비슷하다. 마 총통은 1950년 7월생이고, 박 대통령은 두 살 아래인 1952년 2월생이다.
두 사람의 정치적 비전도 비슷하다. 마 총통은 2008년 3월 실시된 총통 선거에서 국민당 후보로 출마하여 12대 대만 총통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2012년 3월 재선되었다. 마 총통은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통한 대만의 경제회생 정책 등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웠다. 박 대통령의 당선에는 산업화의 상징인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과 국민행복시대 공약 등이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 두 사람의 통일문제에 대한 인식과 접근은 다소 차이가 있다. 마 총통은 정치군사적 현안과 경제문화적 현안을 명확히 구분하는 소위 '정경분리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대만은 당초 중국 본토의 흡수통일 전략을 차단하기 위해 불접촉·불담판·불간섭의 3불정책을 고수하면서 대화를 거부했다. 그러다가 87년 7월 38년 만에 친족방문 등을 허용하는 등 경제적 실리와 외교적 고립을 피하기 위한 정경분리라는 새로운 원칙을 만들어 양안간의 교류를 확대해 왔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전방 3개 도서에 한해 소규모 직항 등을 허용하는 이른바 '소3통(小三通)'정책이었다.
그 이후 대만은 소3통 정책을 넘어 대3통 단계로 전환하고 사실상 중국 본토와의 전면적인 직접 교역 수송 서신왕래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책은 마 총통에 이르러 본격화되었다. 이로 인해 대만과 중국 본토와의 관계가 한층 밀접해졌다.
물론 대만은 국민당 장기집권 시절 소위 '대륙수복'을 통한 중국과의 통일을 외치기도 했다. 더구나 2000년 대만출신의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이 집권하면서 대만의 독립을 천명하여 양안관계를 일시 긴장시키기도 했다.
마 총통은 2008년 5월 집권한 이후 현재까지 중국 본토와 상호신뢰를 구축하고 평화적인 교류를 증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 총통은 최근 "대만과 중국대륙은 지금까지 '1992년 컨센서스(92共識)'에 기초하여 쟁점은 제쳐두고 윈-윈 해결책을 함께 창안하며, 평등과 상호성을 유지한다는 원칙을 견지해왔다"며 "양측은 지금까지 8차례의 회담을 개최하고 18개의 협정에 조인했으며 2개의 합의에 도달했다"고 역설했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정책은 뭘까? 박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대표적 통일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인도적 지원-경제교류 협력을 통해 낮은 단계의 신뢰를 구축하고 정치군사적 수준까지 높은 신뢰를 구축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성공하려면 대만과 중국의 통일인식과 접근법을 원용할 필요가 있다. 즉 정치군사적 이슈와 경제문화적 이슈를 분리하여 신뢰를 확보해 나가는 것이다.
즉 북핵문제는 중대한 쟁점이지만 이를 경제문제와 연계하지 않고 정치적 대응을 통해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적 제재와 봉쇄를 단행했지만 사실상 성공하지 못했다. 경제교류협력은 북핵문제와 별개로 꾸준히 유지, 확대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반도의 통일과 중국 양안의 통일, 과연 어느 쪽이 먼저 이루어질까? 물론 통일의 형식은 다양하지만 2국 2체제를 넘어 1국 2체제, 1국 1체제로 가는 과정에서 한국과 대만은 서로 배워야 할 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통일문제 인식과 접근에 관한 한 대만이 우위에 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핵문제를 냉정하게 인식하고 중장기적, 다자적, 포괄적 접근을 통해 해결해 나가는 지혜를 발휘해야한다. 그리고 경제 문화 관광교류 협력을 확대하여 상호 신뢰를 구축하면서 민족 동질성을 확보하고 통일미래를 차분히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장영권 국가미래전략원 대표·정치학 박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