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7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내렸다. 외형상 정부와 시장의 빗발치는 금리인하 압박에 뒤늦게 굴복한 모양새지만, 실은 한은 나름의 계산에 따른 '정치적' 결정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지난달에도 금리인하가 가능했지만 시기를 이달로 조정한 징후가 짙어서다. 일단 시장과 정부는 반색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한 달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경제 상황에서 뾰족한 근거 없이 입장을 바꾼 중앙은행의 신뢰도는 큰 상처를 입게 됐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9일 정례회의를 열고 지난해 10월 이후 연 2.75%에 묶여 있던 기준금리를 2.5%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지난달 4대 3으로 동결을 택했던 7명의 금통위원은 이날 6대 1의 압도적인 비율로 인하를 결정했다.
한은의 인하 논리는 크게 두 가지다. 7일 추가경정예산이 확정돼 정부 부양책과 공조할 필요성이 생겼고, 유럽중앙은행(ECB) 등 주요국 중앙은행의 금리인하 바람을 외면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은은 "경기가 회복세에 있다는 판단은 지난달과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군색한 논리일 수밖에 없다. 이미 추경은 지난달 이전부터 대세였다. 국회 본회의 통과 여부가 한 달 만에 금리 방향을 뒤바꿀 만한 근거가 되긴 어렵다. 한은이 평소 주요국의 금리 동향을 중요하게 고려한다고는 하나, 이미 미국 일본 등 주요 경제권이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을 펴온 상황에서 ECB의 0.25%포인트 금리인하가 우리 통화정책을 좌우할 만큼 큰 변수였는지도 의문이다. 김중수 총재 스스로도 "전달이나 이달이나 금리 동결 이유가 5개 있다면 인하도 5개인 상황으로, 이번엔 지난달과 다른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할 만큼 이번 금리 결정은 그야말로 '선택'의 문제였다.
결국 자체 '경제 논리'로도 지난달 금리를 내릴 수 있었던 한은이 동결을 택한 것은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던 셈이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동결 결정에는, 외부 압박에 바로 호응하는 모양새를 취할 경우 앞으로 쏟아질 제2, 제3의 요구를 막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어차피 계속 버티기 어려울 바에는 한 번쯤 '튕기는' 모습을 보여 최소한의 독립성은 지키자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간절했던 금리인하 통지서를 받아 든 시장은 반가운 기색이지만 한편으론 뒤통수를 맞은 표정도 역력하다. 김 총재의 발언에 따라 지난달엔 과반이 인하를, 이달엔 동결을 점쳤기 때문이다. 박형민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한은의 일관성 없는 태도로 통화정책의 가장 기본인 '예측 가능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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