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 많은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도 페이스북 유저다. 페이스북 초기 호기심에 가입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쩐지 내 개인사를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이 민망스러워 글은 거의 올리지 않았다(그런 민망스러움은 이미 싸이월드 시절 모두 겪어 학습효과가 있었다). 그런데도 '페친' 신청은 꾸준히 들어왔고, 사람들의 호의까지 모른 척 외면할 수 없어 들어오는 족족 '친구' 신청을 다 받아주었다. 그랬더니 이젠 제법 많은 '페친'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말하자면 주위에 수다스러운 친구들이 전에 없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그 다음부터였다. 나의 '페친'들이란, 주로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제자들이 대부분인데, 그들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자 자신들이, 자신들의 스승과 '페친'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아무 거리낌 없이 뉴스피드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물론 내가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숨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당시엔 분명 그렇게 믿어 버렸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4교시 수업은 들어서 뭐하느냐고 친구들에게 일갈하는 제자가 있었는가 하면(물론 그 4교시 수업은 내 담당과목 시간이었다), 이상한 과제를 내줘서 사람을 이상하게 만드는 이상한 선생이 있다며 한탄조로 말하는 1학년 학생이 있었다(물론 그 이상한 선생도 바로 나였다). 처음엔 발끈해서 내 이 친구들부터 당장 응징하리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바로 그 생각을 철회하게 되었다. 이건 뭐, 가만히 앉아 있어도, 한 명 한 명 상담을 하지 않아도, 학생들 속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던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면 당황스럽고 고민하게 되겠지만, 반대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면 대처하기도 용이하고 해답도 손쉬운 법. 그 후로 나는 마치 관음증 환자처럼 매일매일 페이스북에 접속하여 애인과 헤어진 제자의 속마음과, 게임에 빠져 강의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제자의 상태, 심지어 군에 입대한 제자가 언제 휴가를 나오는지 그 날짜까지 세세하게 체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권력이 SNS라는 매체를 가만히 놔두고, 심지어 더 많은 국민들과 널리 네트워크를 맺으려는 것도, 혹시 나와 비슷한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그러니까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저절로 국민 개개인의 정치 성향을 파악할 수 있고, 흐름도 인식할 수 있고, 구체적인 취향들도 인지할 수 있을 테니까, 이건 다스리기 너무 쉽잖아, 뭐 그런 입장 때문이지 않을까? 모르면 무섭지만, 알면 만만한 게 권력 뒤에 숨은 자들의 통치 속성일 터. 그러니 국정원 직원들은 그토록 열렬히 댓글 작업에 매달린 것이겠지. 나는 페이스북이, 트위터가, 어쩐지 좀 으스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며칠 전엔 여름 학기 졸업을 앞둔 제자 한 명과 그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내 의견을 곰곰 듣던 제자는 '그건 뭐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고요'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슬쩍 이런 말을 덧붙였다. "사실 아이들은 선생님하고 페친인 거 다 알아요. 다 알면서도 그런 글을 올리는 거예요." "다 알면서도? 내가 볼 걸 빤히 알면서도 그런 글을 올린다고? 왜?" "그래야 '좋아요' 클릭수가 더 많이 올라가니깐요. 그래야 더 주목도 받을 수 있고……." 제자의 말에 나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나는 어쩐지 그동안 제자들을 오해하고 있었다는 기분도 들었다. 제자는 그런 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제는요, 고백할 게 있어서 페이스북을 하는 게 아니고요, 페이스북 때문에 고백할 걸 만드는 시대거든요."
제자와 헤어진 후에도 나는 그 말들을 오랫동안 떠올리면서 앉아 있었다. 어쩌면 정말 으스스한 것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따위가 아닌, 우리들 스스로가 되어 버렸구나, 우리들의 고백이 되어 버렸구나, 하는 생각, 그 생각들이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기호 소설가ㆍ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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