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을 맞이하는 미국 워싱턴의 풍경이 한국과 사뭇 달라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이 워싱턴 근교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한 것은 6일(현지시간) 오후 3시 5분. 박 대통령이 캐프리샤 마셜 미국 의전장의 영접을 받으며 공항을 나설 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공군기지 내 골프장에서 마크 유달, 밥 코커, 색스비 챔블리스 상원의원과 골프를 하고 있었다. 의회와 소통하겠다며 마련한 이날 회동은 챔블리스 의원이 홀인원까지 해 더욱 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의원 3명이 골프 핸디가 2~7인 워싱턴 정가 최고의 골퍼들이어서, 실력이 뒤지면서도 승부욕은 강한 오바마가 이들과 소통하긴 힘들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몇 시간 뒤 이번에는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나타났다. 박 대통령이 국무부 청사와 멀지 않은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 헌화할 그 무렵 케리는 전용기를 타고 러시아로 향했다. 케리는 박 대통령이 워싱턴을 떠난 다음날인 9일에야 귀국한다.
다소 매정해 보이는 이런 모습은,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한 박 대통령의 공식 일정이 7일 시작하는데다 방문의 성격이 공식 실무 방문이란 점에서 워싱턴 정가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워싱턴의 한 인사는 국빈 방문이 아니기 때문에 케리가 반드시 정상회담에 함께 할 이유가 없다는 게 일반론이라고 전했다. 정상회담에 필요한 국무장관의 역할은 조 바이든 부통령이 대신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북핵 문제와 원자력협정 등 한미 현안의 주무 장관인 케리가 박 대통령 방문에 맞춰 자리를 비우는 것에 일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케리가 국무장관의 정상회담 배석이라는 외교 관례를 무시하고 한미 현안을 뒤로 한 채 자리를 비우는 것이 결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의 최대 쟁점인 북핵 문제가 미국 외교 정책 순위에서 뒤로 밀린 것도 이 같은 시각을 갖게 하는 한 요인이다.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케리가 러시아에서 시리아ㆍ북한ㆍ아프가니스탄 문제 등 현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했으나 미국 언론은 시리아 사태가 최대 논의 사안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 날로 취임 3개월이 된 케리가 여전히 워싱턴에서 겉도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그는 지난달 한국, 중국, 일본을 방문할 때 북한과의 대화카드를 꺼내는 듯했으나 워싱턴에 돌아온 뒤 입장을 바꿔 ‘장관’이 아니라 ‘정치인’이란 비판을 받았다. 케리는 백악관이 검증을 이유로 미루면서 국무부 실무의 핵심인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를 비롯해 아프리카ㆍ중동ㆍ유럽 차관보 인선을 못하고 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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