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응애응애 울며 꼬물거리는 사내애. 그런데 여자는 어쩐 일인지 아이를 사랑할 수 없었다. 남들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다던데 난 왜 우리 아가에게 사랑을 느낄 수 없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건 모성애가 아니라 차가운 죄책감이었다. 아이 또한 알고 있었다.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그래서 마음의 벌을 받고 싶어 한다는 걸.
어느 날 아이의 몸 속에는 기묘한 벌레가 기어들어왔다. 번개를 먹고 사는 벌레였다. 먹구름이 몰려오면 아이는 벌레에게 이끌리듯 높은 나무 아래에 서서 번개를 맞고 돌아왔다. 위태로웠다. 곧 죽을 것만 같았다. 또 한 번 날이 컴컴해지고 아이가 사라지자, 여자는 아이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번개를 기다리는 아이와 마주 선다.
그러지 마. 엄마는 너와 함께 살고 싶어. 아이를 말리기 위해 이 말을 해야 할 차례였다. 하지만 여자의 입에서는 차마 이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대신 아이를 꼭 끌어안고, 이렇게 속삭인다. "우리 같이 죽을까. 다음 생에는 꼭 너를 사랑하는 엄마로 태어날 테니…."
만화 '충사'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내가 아는, 가장 슬픈 엄마다. 모성애 때문이 아니라, 없는 모성애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는 엄마. 다음 생의 사랑을 기약하며 같이 죽자는 말로밖에 달리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는 엄마. 오늘은 이 슬픈 엄마에게도 카네이션 한 송이 선물하고 싶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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