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 없이 시즌을 시작한 포항 스틸러스의 '쇄국 축구'가 위세를 떨치고 있다. 포항은 K리그 클래식에서 6승4무의 무패행진으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시즌까지 따지면 리그 18경기에서 11승7무로 팀 최다 경기 연속 무패 기록(종전 16경기)을 경신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전반기를 1위로 마칠 가능성이 크다. 황선홍(45) 포항 감독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상승세의 원동력을 짚어봤다. 그리고 '신토불이 신화'를 위해 경계해야 할 요소와 위기 극복 방안까지 들어봤다.
최대 적 '부담감'과 '욕심'
황 감독이 요즘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이 부담감 완화다. 무패 행진을 달리고 있다 보니 생길 수밖에 없는 부담감을 경계하고 있는 것. 그는 "선수들에게 부담감을 가지지 말라는 얘기를 한다. 용병이 없다 보니 무패가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시즌 전 워크숍에서 '서두르지 말고 즐기면서 경기를 하자'고 약속했던 것만 잘 지키자고 독려하고 있다. 일단 경직 되면 우리 특유의 패스 플레이가 어렵다"며 부담감이 최대 적이라고 강조했다.
전반기 5위권을 목표로 잡았지만 포항은 기대 이상의 성적표를 거두고 있다. 4월의 빡빡한 일정도 무사히 잘 넘겼다. 황 감독은 "4월 스케줄이 타이트해서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부상자 없이 첫 번째 고비를 잘 넘긴 것 같다. 날씨가 더워지는 7월의 경기 일정이 만만치 않아 고비가 오지 않을까 싶다"고 털어놓았다. 선수들이 잘 하고 있고 팀 분위기도 좋기 때문에 사령탑의 욕심을 경계했다. "제가 욕심을 안 갖는 게 중요하다. 감독이 욕심을 안 가져야 초심으로 상대와 싸울 수 있다. 계속해서 냉철하게 판단하고 플랜을 짜야 한다. 결국 자신과의 싸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곤경에 빠질 수 있다." 아직 우승을 논하기 이르지만 이런 요소만 경계한다면 6년 만의 패권도 가능하다는 입장. "지금의 약점을 보완해 우리 플레이가 더 살아난다면 우승의 문은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포항 색깔은 '콤팩트 축구'
현대 축구의 흐름에 걸맞게 세밀한 패스 플레이로 경기를 풀어가는 포항을 지칭하는 수식어들이 많다. '포항셀로나', '스틸타카', '과메기타카' 등이 포항 축구를 요약하고 있다. 이중 황 감독은 '스틸타카'를 가장 좋아한다. "팀 고유의 명칭(홈 구장 스틸러스)이 포함돼 있고, 포항이 잘하는 플레이를 축약해서 보여주는 말이다." 다만 '바로셀로나'라는 수식어에 대해서는 경계했다. "포항이 바르셀로나처럼 정말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포항셀로나'는 좀 맞지 않는 것 같다. 현대 축구는 속도전이라 할 수 있는데 세밀하고 빠른 축구를 추구하는 건 맞다."
그렇다면 팬들이 아닌 황 감독이 바라보는 포항 축구는 어떤 색깔일까. 그는 "콤팩트 축구라 할 수 있다. 공격과 수비 모두 간결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간격이 벌어지거나 밸런스가 무너지면 간결함을 유지하기 힘들다"라고 설명했다.
개인 역량보다 헌신
포항은 개인 역량보다 팀 플레이로 위력을 뽐내고 있다. 그렇다 보니 공격포인트 분포도가 14개 팀 중 가장 폭넓다. 포항에서 개인 최다 득점자(3골)는 황진성과 고무열, 이명주다. 서울과 함께 팀 최다 득점(17골)을 기록하고 있는데 포항에는 득점자가 9명이나 된다. 서울의 경우 데얀(6골), 몰리나(3골), 고요한(3골)에 편중됐다. 황 감독은 "개인 역량으로 하는 축구는 좋은 축구가 아니다. 헌신적인 선수들이 많아야 팀의 경쟁력도 생긴다"며 "제3자가 보면 스트라이커로 (박)성호가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수비에서도 많이 뛰는 등 희생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요즘 가장 예뻐 보인다. 성호 외에도 우리 팀에는 대부분의 선수가 희생적이라 팀 플레이가 산다"고 흐뭇해 했다.
반대로 개인 역량이 빼어난 '해결사'가 없어 위험 부담도 있다. 그는 "사실 공격진이 더 터져 줘야 한다. 장기 레이스에서 확실한 해결사가 없다는 것은 위험 부담성이 내재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젠가는 득점력 부족으로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냉철하게 분석했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고 위험 부담을 최소화할 방안을 세우고 있다. "6월의 A매치 기간에 정비할 시간이 있다. 공격 전환과 콤비네이션 플레이를 더 향상시키고 문전에서 세밀함과 집중력을 더욱 높이는 훈련으로 길게 보고 팀을 끌고가겠다."
비밀수첩과 충격의 다이어트
황 감독은 경기 중 계속해서 수첩에 무언가를 적는다. 일명 비밀수첩은 황 감독의 지침서가 된다. 그는 "수첩을 공유한 적이 없다. 저만 알아볼 수 있는 글씨로 쓰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봐도 못 알아볼 것"이라고 웃었다. 이어 그는 "수첩을 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자주 갖는다. 상황에 따라 지키는 축구가 필요한데 수첩을 보니 공격 쪽에서 지연하는 게 가장 낫다고 적어 놓았더라"고 설명했다. 수첩에 적힌 내용을 토대로 '잠그는 축구는 지양한다'는 축구 철학이 확립된 셈이다. 그래서인지 교체 카드로 공격 요원만 투입한다. 이기고 있더라도 공격에서 공을 더 많이 소유하고, 쐐기골을 넣는 게 최선의 수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외국인 선수 없이 시즌을 시작했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조별리그 탈락의 아픔을 겪다 보니 황 감독을 안쓰럽게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홀쭉해진 황 감독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인지 말랐다"고 하는 지인들이 많다. 그러나 황 감독은 전적인 오해라고 선을 그었다. "지난해 올스타전에서 2002년 월드컵 10주년을 맞아 뛰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일부러 다이어트를 했다. 그렇다 보니 선수 시절과 비교해도 1~2㎏ 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얼굴 살부터 빠지는 것 같다." 스트레스 해소 방법도 운동이다. 그는 "러닝 머신에서 1시간 가량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운동하면 시원해지고 좀 풀린다"고 말했다.
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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