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케냐 식민통치 당시 독립투쟁에 가담했다가 고문 당한 케냐인들에게 배상을 하기로 하고 구체적 협상을 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6일 보도했다. 1980년까지 식민국 지위를 유지했던 영국이 식민지에서 저지른 범죄행위를 처음으로 배상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이어서 옛 영국 식민지 피해자들의 소송 제기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 외교부는 지난달 파울로 인질리(86), 왐부가 와 니인기(85), 제인 무소니 마라(74) 등 케냐인 원고 3명에게 "대법원 상고를 연기할 테니 배상 합의를 위한 협상을 하자"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다. 원고들은 1950년대 결성된 케냐 독립투쟁단체 마우마우 출신으로 당시 강제수용소에 구금돼 거세, 성폭행, 물고문, 구타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 영국 외교부는 앞서 지난해 7월 항소법원에서 식민지 시절 케냐인을 고문한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소송 시한이 종료됐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10월 원고 측에 손해배상 청구 권한이 있다고 판결했다.
노년의 원고들은 7년 동안 지난한 투쟁을 했다. 처음엔 5명이었지만 그새 2명이 노환으로 숨졌다. 2006년 영국에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나선 이들은 "식민지 정부의 법적 책임은 1963년 독립한 케냐 정부로 승계됐다"는 영국 정부의 논리에 막혀 자국 정부와 소송전을 치르며 시간을 허비했다.
2009년 시작된 영국 정부와의 소송은 원고 측을 후원하는 영국 역사학자들이 2011년 외교부 비밀문서고에서 식민지 관련 문건을 무더기로 찾아내면서 급반전했다. 8,000여건에 이르는 문건에는 영국군이 마우마우 봉기를 잔혹하게 진압한 사실을 비롯해 아덴(현 예멘), 실론(스리랑카), 키프로스, 말라야(말레이시아) 등 옛 영국 식민지 38곳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다. 지난해 4월 항소법원의 문건 공개 명령으로 식민통치의 야만성이 드러나면서 수세에 몰린 영국 정부는 결국 케냐에서 이뤄진 고문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배상금 합의가 이뤄지면 비슷한 피해를 입은 마우마우 대원들이 대거 소송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당시 봉기 진압 과정에서 구금된 이들은 8만~30만명이며 이중 생존자는 최대 1만명으로 추정된다. 가디언은 "개인마다 합의 액수가 다르겠지만 전체 배상액은 수천만파운드(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다른 옛 영국 식민지에서도 손해배상 소송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 1950년대 키프로스 식민당국에 맞서다가 고문을 당한 그리스계 독립투쟁조직 에오카 대원들이 이미 영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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