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암보험에 가입한 A씨는 다음해 8월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지만 가입했던 생명보험사로부터 1,2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했다. 3개월 전 건강검진에서 관찰된 갑상선 결절을 보험사에 통보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계약자가 보험사에'계약 전에 알릴 의무'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A씨는 "2010년부터 직장 건강검진에서 갑상선 결절이 발견됐으나 치료가 필요 없다고 해 병원 치료를 받은 적이 없고, 보험 계약 당시 설계사가 이런 내용을 질문하지도 않았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결과적으로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가 A씨의 손을 들어줬지만, 관련 규정에 애매한 점이 많아 A씨와 보험사 간의 의견 충돌은 예견된 것이었다.
금융당국이 보험 민원 감축을 핵심과제로 선정, 추진하면서 다음주까지 감축 방안을 제출해야 하는 보험사들이 막바지 대책마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A씨가 제기한 통지의무위반 관련 민원에서부터 보험금 산정, 보험모집행위 등 다양한 유형의 민원에 대해 원천적으로 다툼의 소지를 없애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복잡한 보험 상품 특성상 민원이 발생할 소지가 커 칼로 무 자르듯 '50% 민원 감축'이라는 지침을 만족시키려면 부작용이 많을 거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6일 금융감독원 및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보험 관련 민원은 총 4만8,471건으로 금감원에 접수된 민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유형도 법률ㆍ약관 해석, 장해 및 상해등급적용, 고지 및 통지의무위반건 등 상품이 복잡한 만큼 다양하고, 건수도 2010년 4만334건, 2011년 4만801건 등 매년 증가하고 있다.
소비자 보호를 위해 늘어나는 민원관리를 제대로 하자는 취지는 좋으나, 민원 건수 감축 목표를 설정해 몰아붙이는 건 행정편의주의라는 지적이 많다. 보험 관련 연구소 관계자는 "다른 금융상품에 비해 보험 관련 민원이 많은 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민원 발생건수 감소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이런 상황을 틈타 부당한 보험금을 타내려는 시도도 늘어나 결과적으로 보험료 인상 요인이 되는 등 다른 계약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손보업계 관계자도 "민원을 감축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보험사가 원칙을 저버리는 경우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무턱대고 떼를 쓰는 악성민원인을 걸러 낼 묘수도 없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여러 번 같은 민원을 제기하는 악성민원인은 집계에서 제외한다고 하지만, 한 번 제기한 민원인이 악성민원인인지 아닌지는 구분해낼 길이 없다"고 꼬집었다.
보험업계는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일단 다음주 민원 감축 방안을 제출한 후 시행해 나가며 계속 보완하겠다는 방침이다. 한화생명은 5월 중순부터 전국 10개 지역 본부에 고객불만체험관을 설치하고 임직원과 설계사들이 고객들의 민원을 직접 듣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동부화재는 5월부터 두 달 동안 들어오는 모든 민원에 대해 평가하고 원인을 분석해 대안을 마련하는'민원감축 캠페인'에 들어갔다. 다른 보험사들도 별도의 민원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