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어 회를 먹다말고 울음을 터뜨린 적이 있다. 처음으로 간 섬진강가에서 회 한 접시를 시켰던 것인데, 두서너 점째 입에 넣고 오물거리던 순간 향긋 비릿한 향과 말캉하게 씹히는 식감이 오래 전 어떤 기억을 갑작스레 되살려냈다. 오열에 가까운 울음이었고, '프루스트현상'이라고 해도 좋을 경험이었다.
어린 시절을 서울에 있는 부모와 떨어져 저 아랫녘 보성강가의 외가에서 줄곧 보냈다. 부모로부터 떨어진 어린 것들이라면 내남없이 지닐 만한, 등짝이 서늘한 것 같은 기운을 외조부모 두 분이 털어주고 보듬어주었다. 특히 다른 가족들에게는 버럭 큰소리를 내는 일이 있어도 손녀를 향해서만은 한정없이 부드러웠던 외할아버지는, 자갈 많은 보성강가로 자주 어린 나를 데리고 나갔다. 나가서는 그물을 던져 잡은 물고기를 그 자리에서 큰 돌에 놓고 잘라 한 점씩 입에 떼어 넣어 주었다. 옛날 외할아버지의 두툼한 손가락 끝에 집혀 내 입으로 옮겨져 오던 희고 투명한 살점이 은어였던 것이다. 그 기억을, 서울로 올라온 후 수험생이라는 이유로 장례조차 가지 못한 채 외할아버지를 보내고, 서른을 넘기기까지 까무룩 잊었다가 섬진강가에서 은어 회를 한 입 베어 문 순간 떠올린 것이다. 나에게 외할아버지가 있었음을…. 너무 어려 기억에 없는 친할아버지를 제외하고, 외할머니와 친할머니와도 언제든 어딘가 건드리기만 하면 촉발될 울음보 추억이 내게는 있다. 시각이든 미각이든 어느 하나만 건드리면 기억과 관련된 감각신호들이 일제히 호응해서 전체 기억을 되살려내는 것이다. 참, 다행한 일이다.
'나도 내가 늙었다는 것을 안다. 내 인생으로부터 영원히 사라진 것들이 있다는 걸 나도 알아.' 로맹가리의 자전적 소설 에 나오는 문장이다.
나는 내가 늙었다는 것을 알게 된 시점이, 내게 더 이상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부를 가족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때라고 여긴다. 그때 인생으로부터 영원히 사라진 것은 단순히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존재가 아니라 그 조부모와의 관계 안에서만 생성되고 표출되는 내 안의 어떤 것이었다.
'늙음'이 조부모와 관계가 있다는 믿음이 터무니없지 않음을, 이웃해 사는 선배 언니를 통해서도 종종 확인한다. 나이 쉰을 넘겨 머리가 희끗희끗한 선배 언니에게는 아직도 할머니가 계신다. 구순을 넘기셨다는 데도 전화로 손녀의 안부를 챙길 정도로 정정하시다.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배 언니는 한 연구소의 중책을 맡고 있기도 한데, 흰머리가 보이는 머리카락을 염색하지 않고 자연스레 둔 모습까지 늘 당당하고 의젓해 보이는 여성이다. 그런 그녀가 때로 어린아이같이 어려 보이는 순간이 있으니, 바로 할머니와 통화를 하거나 어쩌다 대화 중에 할머니 이야기를 하게 될 때이다. 중년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이, 목소리에 코맹맹이 어리광이 섞이고 눈도 반짝반짝 빛을 낸다.
몇 해 전 친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이제 내게는 '할'자를 붙여서 부를 수 있는 가족이 더 이상 없게 되었다. 삶이 어느 한 부분 쓸쓸해지고 살풍경해진 시기가, 그 마지막 '할'머니가 곁에 계시지 않게 된 즈음인 것 같다. 낙숫물처럼 무조건적으로 쏟아지던 내리사랑이 사라진 것이다. 그 즈음부터, 싫든 좋든, 그만 어른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섬진강에서 은어회를 먹었던 그 때가 '첫 은어'가 올라온다는 오월 무렵이었는데…. 내일은 어버이날이라, 부모님을 뵈러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 당신들의 손녀딸이 만든 종이 카네이션에 얹혀가는 것으로, 꽃을 따로 준비하지 않은 지 여러 해가 되었다. 내일 아침,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운 나의 부모는 어김없이 손녀가 만든 카네이션을 가슴에 꽂고 얼굴이 꽃처럼 벙글어질 것이다. 아이가 언젠가는 지금의 나처럼 그리워하게 될 그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이….
박미경 갤러리 류가헌 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