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을 지켜온 민주당의 영혼만 빼고 모든 것을 버려야 우리가 살 수 있다."
4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새로 선출된 김한길 대표의 제일성은 당의 대혁신이었다. 김 대표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뉴 민주당'을 외쳤다. 그러나 대회에 참석한 당원 1만여명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따스한 봄날이었지만 행사장 분위기는 썰렁했다.
제1야당의 대표 경선이 이처럼 열기 없이 치러진 이유는 이번 경선의 승부가 일찌감치 판가름 났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개표 결과도 그랬다. 비주류였던 김 후보는 61.72%를 얻어 주류였던 친노 그룹이 지원한 이용섭 후보(38.28%)를 큰 표 차이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이번 경선이 무관심 속에서 치러진 근본적 이유는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죽어가는 정당'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미래의 희망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대선 패배 이후에도 진정으로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게다가 대선 패배 책임을 둘러싸고 끊임 없이 계파 싸움을 벌이곤 했다.
이번 경선도 계파 싸움의 연장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쨌든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주도했던 친노 그룹이 이번 경선에서 완패함으로써 민주당의 새판 짜기가 시작됐다. 게다가 정치 혁신을 외치는 안철수 의원이 4∙24 재보선 때 서울 노원병에서 당선됨으로써 야권 전체의 재편 작업이 불가피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의 1, 2차 시험대는 올해 10월 30일 실시되는 재보선과 내년 6월 지방선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 후에 차기 총선(2016년)과 대선(2017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전에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은 지지층을 비롯한 유권자들에게 조그만 희망의 불씨라도 보여주는 것이다. 아지랑이 같은 희망이라도 보여줘야 민주당이 재기를 시도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선거에서 지기만 하는 정당은 죽어가는 정당"이라며 "이겨가는 민주당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야권은 10월 재보선이나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거 대결 구도를 새로 짜야 한다.
야권은 그동안 중요한 선거 직전에 후보를 단일화하는 전략을 펴왔다. 후보 단일화 전략은 몇 차례 승리를 가져오기도 했으나 실패를 낳기도 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불완전한 후보 단일화는 대선 패배로 귀결됐다.
앞으로는 선거 구도를 여당과 하나의 야당이 경쟁하는 구도로 재편해야 한다. 후보 단일화가 아니라 야권 통합 방식으로 단일 야당을 만들어야 한다. 야권 통합을 하면 우선 선거 구도의 불확실성이 사라지게 된다. 단일화가 될지 말지 모르는 상황이 지속되면 선거 구도는 안개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야권 통합은 야당의 활로를 모색하고 정치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채택된 대통령제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는 양당제와 친화성이 높다. 따라서 우리의 정당 체제를 여당, 통합 야당, 진보정당 등 제3세력이 병존하는 '2+알파' 구도로 짜는 게 바람직하다.
지금 상황에서 야권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김 대표가 주도하는 민주당이 완전히 새로 태어나야 한다. 새로운 리더를 적극적으로 키워야 하고 당의 노선과 정책도 국민 눈높이에 맞춰 재조정해야 한다.
또 안철수 의원도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단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당을 만드는 방법도 있지만 굳이 신당 창당까지는 하지 않아도 된다. 안 의원도 자신의 노선을 애매한 상태로 놔두지 말고 분명한 깃발을 들어야 한다. 민주당과 안철수 세력은 이처럼 먼저 자신이 변해야 한다. 이어 협력하고 경쟁하는 과정을 거친 뒤 본격적인 통합 논의에 착수할 수 있다. 두 세력은 시민사회의 범야권 세력까지 수혈해 새로운 야당, 큰 야당을 창당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최소한 내년 지방선거 전에는 하나된 야당이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야권의 운명이 김한길과 안철수에 달렸다.
김광덕 정치부장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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