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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온호, 가장 험난한 남극 빙붕 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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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온호, 가장 험난한 남극 빙붕 뚫었다

입력
2013.05.05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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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험난하기로 이름난 남극의 라센 빙붕(氷棚ㆍice shelf)을 지난달 우리나라 첫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탐사에 성공했다. 이 빙붕 아래 해저에서 직접 시료를 채취한 건 아라온호가 세계 처음이다. 급속한 온난화에 따른 지구 변화의 열쇠를 쥔 남극의 빙붕을 직접 조사할 수 있는 길을 연 동시에 국산 쇄빙선과 우리의 극지 탐사 능력을 세계 과학계에 널리 알린 쾌거다. 실력도 좋았지만 운도 따랐다. 그 운은 준비된 연구진만 잡을 수 있었던, 오직 아라온호를 위한 기회였다.

해저 빙붕 채취는 세계 처음

아라온호가 4월에 남극 빙붕 탐사에 나서기로 했다는 계획이 알려지자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은 반신반의했다. 4월이면 남극은 혹한이 시작되는 시기다. 영하 40도를 밑도는 강추위 속에서의 극지 탐사는 지금껏 거의 시도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험난하다는 남극 웨델해의 라센 빙붕으로 가는 바닷길이 열리는 기간이 딱 이때다. 이후엔 다시 언제 열릴지 확실하지 않다. 라센에 도전하려면 모험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국 과학자 17명, 미국 과학자 20명이 탑승한 아라온호는 한달 여 전 남극을 향해 출항했다. 이들 탐사팀은 웨델해 부근에서 인공위성이 보내오는 영상과 바람의 방향, 유빙(流氷ㆍ물 위를 떠다니는 얼음덩어리)의 움직임 등을 분석하며 라센 지역의 빙붕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렸다. 드디어 지난달 25일, 쇄빙선으로 얼음을 깨고 빙붕까지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길이 열렸고, 아라온호는 조심스럽게 빙붕의 입구인 라센A 지역을 지나 라센B를 거쳐 이날 새벽 1시58분(한국시간) 가장 깊은 라센C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라센A와 B는 미국과 영국, 독일, 일본, 중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극지 연구 강국들이 이미 수 차례 다녀갔다. 최근 빠른 속도로 빙붕이 녹으면서 그 아래 대륙붕에 묻혀 있는 지하자원을 조사하기 위한 이들의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그러나 라센 지역의 거대한 빙붕 가운데 가장 안쪽에 있는 라센C는 2006년 미국 쇄빙선 나다니엘 파머호에게만 접근을 허락했다. 그나마 파머호는 접근 직후 곧바로 빠져 나와야 했다. 거대한 얼음덩어리들이 갑자기 사방을 둘러싸며 바닷길이 닫힐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빙붕 안에 갇히면 배는 꼼짝 없이 침몰하고 만다.

그랬던 라센C가 아라온호는 이틀 동안 빙붕 안에 머물도록 허락했다. 탐사팀은 덕분에 이 빙붕 아래 해저의 흙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채취하고 극지생명체의 존재도 확인할 수 있었다. 위험을 무릅쓴 과학자들의 발길에 자연이 화답한 셈이다. 현재 아라온호는 빙붕을 빠져 나와 라센 반대편으로 안전하게 이동해 있다.

미지 생명체 연구 단서 기대

남극 웨델해 북서쪽에 발달한 라센 빙붕 지역은 영화 '투모로우'의 소재가 된 곳이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이곳의 거대한 빙붕이 녹으면 해수면이 상승해 주요 대도시가 물에 잠길 수 있다는 우려가 실제로 과학자들 사이에서 제기됐다. 극지연구소 극지기후연구부 윤호일 책임연구원은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바다에 떠있는 얼음들(빙산, 빙하 등)이 녹아도 해수면 상승에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적지만, 남극대륙을 덮고 있는 빙붕이나 빙상이 녹으면 해수면은 급격히 올라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극대륙의 상당 부분은 커다란 얼음덩어리로 덮여 있는데, 이를 빙상(ice sheet)이라고 부른다. 빙붕(ice shelf)은 바다 쪽으로 발달한 빙상 중 바다와 맞닿아 있는 부분으로 1년 내내 얼음 두께가 300~900m로 유지된다. 또 떨어져 나온 얼음덩어리들이 조각조각 바다 위에 떠있는 게 빙산(iceberg), 육지 여기저기에서 만들어진 지역적인 빙상이 빙하(glacier)다.

극지 연구자들이 빙붕을 주목하는 이유는 빙상이 녹아 내리는 속도를 빙붕의 물리, 화학적 성질이나 주변 환경 등을 통해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쇄빙선만으론 빙상에 직접 접근하기 어려우니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이 인류에게 얼마나 빠르게 현실화할 수 있는지를 알아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빙붕 탐사다. 아라온호 탐사팀은 이번에 채취한 라센C 빙붕의 해저 퇴적물을 분석해 과거 수만 년 동안 남극 빙상의 이동 경위를 추적하고, 이를 근거로 앞으로 빙상의 움직임도 예상한다는 계획이다.

또 "이번 탐사에서 아라온호는 조개나 이끼와 비슷하게 생긴 원시적인 생명체가 라센 빙붕 아래 해저에 살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전해왔다"고 윤 연구원은 덧붙였다.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한 환경으로 꼽히는 영하 수십 도의 추운 남극 바닷속에서 이들 생명체가 생존해온 메커니즘을 연구하면 화성을 비롯한 지구 밖 행성에 존재할 수도 있는 미지의 생명체를 연구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과학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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