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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하나로 회화사 주도한 큰 스승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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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하나로 회화사 주도한 큰 스승을 엿보다

입력
2013.05.05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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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영정조 시대는 겸재 정선(1676~1759)의 진경산수화, 단원 김홍도(1745~1806?)의 풍속화로 대표되는 회화의 황금기다. 조선 성리학을 바탕으로 꽃피운 화풍은, 그러나 18세기 말~19세기 초 급격히 쇠퇴해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이끄는 추사파에 그 자리를 내준다. 단절된 두 시대를 잇는 '미싱링크'는 정조시대 예술계 최고 실력자인 표암 강세황(1713~1791)이 주축이 된 '조선남종화파'다. 단원 김홍도의 멘토였던 강세황은 글씨, 그림, 비평에서 일가를 이룬 당대 최고 문인이었지만, 가세가 기울어 50대까지 배를 곯으며 시서화만 짓는 백수로 살았다. 60대 중반 과거 급제했고, 70대에 서울시장 격인 한성판윤을 지낸 그의 삶과 회화는 진경산수와 문인화의 흐름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표암 강세황 탄생 300주년을 맞아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봄 기획전으로 12~16일 '표암과 조선남종화파'전을 연다. 표암을 중심으로 원교 이광사(1705~1777), 현재 심사정(1707~1769), 호생관 최북(1712~1786), 단원 김홍도, 긍재 김득신(1754~1822) 등 20명의 작품 70여 점을 공개한다. 실제 경치를 보고 그린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압도적 스케일을 자랑하는 사실적 그림이라면 중국 명대의 남종문인화를 계승한 조선남종화는 부드럽고 쓸쓸한 기운이 감도는 것이 특징이다. 대개 화보(畫譜, 중국 그림을 모은 족보)를 모방해 화풍을 익혔기 때문에 풍경을 직접 보고 그리기보다 상상으로 그렸다.

명대 남종화파와 비교해 조선남종화는 순박하고 담백한 우리 고유의 색채가 두드러진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한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은 "현재 심사정이 칩거형으로 조선남종화의 길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면 표암 강세황은 활동가형으로 다양한 화풍을 받아들였다. 표암은 남종화를 중심으로 겸재의 진경산수화, 청나라 사행 때 목격한 서양화 등 다양한 화풍을 수용하고 실험했다"고 말했다.

성균관 대제학 강현의 아들로 태어난 표암은 부친이 맏형인 강세윤의 과거시험 부정을 주도하다 들통나 삭탈 관직되는 바람에 일찌감치 벼슬길을 포기하고 서화 수련에 몰입한다. 남인 소북 집안 출신의 표암이 노론계 인사 겸재 정선의 화풍 대신 명대 문인화를 계승한 현재 심사정의 남종문인화풍을 따른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보인다. 심사정과 더불어 산수, 화훼 등에 주력하며 남종문인화풍의 수용과 정착을 주도했고, 만년에 묵죽을 중심으로 사군자 그림에 매진하며 조선 후기 사군자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표암을 중심으로 이번 전시를 살펴보면 흥미롭다. '물외한거(物外閑居, 세상 밖에서 한가롭게 살다)'는 강세황이 중국 그림을 보고 그린 수많은 방작 중 하나다. 거친 붓으로 옅은 먹을 더해 대상을 묘사했고, 여백이 많아 화면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다. '소림묘옥(疏林茆屋, 성긴 숲속의 띠풀 집'은 강세황이 중년 이후 명대남종화를 우리 풍토에 맞춰 변화, 발전시킨 작품이다. 농담이 뚜렷하고 필치가 거칠고 굳세며 반듯하다. 젊은 시절 표암을 사사한 김홍도는 평생 스승으로 깍듯이 모셨다고 전해진다. 표암이 제발(題跋ㆍ그림 해설)을 쓴 '기려원유(騎驢遠遊, 나귀 타고 먼 길을 떠나다)'는 단원이 표암의 화풍을 계승해 그린 산수화로 평가 받는다.

백인산 간송미술관 학예사는 "조선의 독자성만 강조하다 보면 자칫 고루해지기 쉽다. 조선남종화는 당시로서 국제적 감각인 명의 화풍을 들여온 것으로 진경산수의 독자성을 보완했다. 이후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등 기술적 완성도가 높은 화원화가들이 나오는 바탕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표암 회화의 다양성과 국제성은 많은 추종자를 낳았고 19세기 전반 추사파로 이어지는 디딤돌 역할을 한다.

6,7월에도 표암 탄생 300주년을 기리는 행사가 잇따라 열린다. 다음달 25일부터 열리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강세황_예술로 꽃피운 조선 지식인의 삶'전은 초상화가 이명기가 그린 표암의 초상화, 서양화풍을 실험한 표암의 산수화 '영통동구도(靈通洞口圖)' 등 박물관이 소장한 표암의 대표작을 소개한다. 표암의 묘가 있는 충북 진천군에서는 한국미술사학회 주관으로 7월 초 학술대회를 연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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