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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일본"… 한국 여자바둑 어부지리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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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일본"… 한국 여자바둑 어부지리 우승

입력
2013.05.03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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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바둑이 또 세계를 제패했다. 지난달 28일 중국 저장성 타이저우에서 벌어진 제2회 화정차업배 세계여자바둑단체전에서 한국이 막판에 짜릿한 역전극을 연출하면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정말 한 편의 드라마같은 극적인 막판 대역전 우승이었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네 나라에서 각각 3명씩 출전해 단체전으로 승부를 겨루는 이번 대회에 한국은 박지은, 김미리, 김채영이 출전했다. 그러나 사실상의 결승전이나 다름없는 1차전 한중전에서 1대2로 패해 일찌감치 우승이 멀어진 듯했다. 둘째 날 2차전에서 한국이 일본에 2대 1로 승리해 1승1패가 됐지만 중국은 대만을 3대0으로 완파하며 2승으로 단독 선두를 달렸다. 한편 일본 1승1패, 대만 2패를 기록했다.

3차전에서 한국과 대만, 중국과 일본이 대결하게 되지만 객관적인 전력에 비추어 중국의 승리가 확실시되기 때문에 중국의 우승이 거의 굳어진 상태였다. 한국 선수단에서도 이미 중국의 우승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정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엄청난 이변이 일어났다. 한국 선수단이 3차전에서 일찌감치 대만을 3대 0으로 제압하고 담담한 심정으로 중국과 일본의 경기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뜻밖에 일본이 중국을 2대 1로 격파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일본 주장 셰이민이 중국 주장 리허에 불계승을 거둔 데 이어 노장 무카이 치아키가 왕천싱과 6시간 가까운 혈전을 벌인 끝에 딱 반집을 이긴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 중국, 일본이 모두 2승1패 동률이 됐는데 한국과 중국이 똑같이 개인승수 합계 6승으로 일본(5승)보다 앞서 두 팀이 1, 2위를 다투게 됐다. 대회 규정에 따르면 이 경우 1장 승수와 2장 승수를 차례로 비교해 순위를 정하도록 돼 있다. 공교롭게도 한국 1장 박지은과 중국 1장 리허가 똑같이 2승1패로 승수가 같았다. 그러나 한국의 2장 김미리가 3승을 거둔 반면 중국 2장 탕이는 2승(1패)에 그쳐 간발의 차이로 한국의 우승이 확정됐다.

한국은 이번 대회서 일본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특히 셰이민이 2차전까지 전승을 달렸던 중국 주장 리허를 꺾은 것이나 무카이 치아키의 극적인 반집승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이 마치 한국의 우승을 위해 누군가 일부러 교묘하게 각본을 짜맞춘 듯 정말 아슬아슬했다. 사자성어를 좋아하는 중국 매체들은 이번 한국의 우승을 '좌수어리(坐收漁利ㆍ앉아서 어부지리를 얻음)'라고 표현했다.

한국 바둑이 올해 열린 세계대회 단체전에서 극적인 막판 뒤집기 우승을 거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 제3회 초상부동산배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한국과 중국의 대표선수들이 각각 5명씩 출전해 1, 2차전을 벌여 우승을 다투는 이 대회서 한국은 1차전에서 김지석과 최철한이 이겼지만 조한승, 박정환, 김승재가 모두 패해 2대 3으로 뒤졌다. 대회 규정에 따르면 1, 2차전 성적을 합산해 순위를 정하되 5대 5 동률일 경우 2차전의 주장전을 이긴 팀이 우승을 차지한다고 돼 있다.

따라서 한국이 우승을 하려면 2차전서 4대1로 이겨야 한다. 그러나 피차 비슷한 전력인데 4대1 승리는 거의 불가능하다. 또 하나 가능성은 2차전에서 3대2로 이기되 주장인 김지석이 중국 주장 판팅위와의 맞대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어쩌면 4대1 승리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이지만 한국은 2차전에서 김지석이 불리한 바둑을 끈질기게 버텨 판팅위에게 역전승을 거뒀고 박정환과 조한승이 2승을 보태 '당초 각본대로' 역전 우승에 성공, 지난 2년 동안 중국에 내줬던 우승컵을 되찾아 왔다.

이 뿐 아니다. 그에 앞서 열린 제14회 농심신라면배서도 중국이 초반에 강세를 보였다. 마지막 3라운드에 들어가기 직전 일본은 전원 탈락했고 중국은 천야오예, 셰허, 장웨이지에 등 세 명이 건재한데 반해 한국은 최철한과 박정환 두 명 밖에 남지 않아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최종라운드에서 최철한이 천야오예를 이긴데 이어 박정환이 셰허와 장웨이지에를 모두 물리쳐 그동안 농심배서 항상 그랬듯이 이번에도 역시 막판 연승으로 역전 우승을 일궈냈다.

또 4월에 끝난 제3회 황룡사쌍등배서도 중국이 신예 위즈잉의 6연승에 힘입어 거의 우승을 예약한 듯 했지만 마지막 라운드에서 한국의 소녀 장사 최정이 중국 선수 세 명을 잇달아 물리쳐 주장 박지은이 출전하지 않고도 거뜬히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이로써 한국은 올해 개최된 세계대회 단체전을 모두 석권했다. 물론 선수들이 잘 싸웠지만 운도 많이 따랐다. 반면 개인전에서는 성적이 좋지 않았다. LG배 결승전서 원성진이 스웨에게 졌고, 응씨배서 박정환이 판팅위에게 패했다. 중국 선수끼리 겨룬 백령배에서는 저우루이양이 우승, 중국이 모든 대회를 싹쓸이했다. 올 상반기 마지막 한중 대결인 이세돌과 천야오예의 춘란배 결승전 결과가 주목된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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