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캐릭터? 라인? 그딴 게 널 지켜줄 수 있다고? 잘 들어 정주리, 너같이 무능하고 멍청하고 언제 잘릴 지 모르는 계약직들을 지켜줄 수 있는 건 딱하나, 말라 비틀어지고 볼품 없는 네 몸뚱이 뿐이야, 소속도 동기도 라인도 없는 우리 같은 계약직들에게는 이 몸뚱이가 재산이라고 이 몸하고 자격증만 있으면 대한민국회사 어디에서 잘려도 다시 들어갈 수 있어 그러니까 또 들어가서 변기에서 질질 짜지 말고 해장이나 똑바로 해!"
KBS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자격증만 124개나 가진 슈퍼갑 계약직으로 등장하는 '미스 김'(김혜수)이 쏟아내는 명대사가 20∼30대 직장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지난달 1일 방영 이후 10% 중반을 넘기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이 드라마는 약 86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대한민국 비정규직 문제를 코믹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그린다.
이 과정에서 '미스 김'이 매회 쏟아내는 회사 및 사회 생활과 관련된 발언들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미스 김 어록'이라고 불리며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미스 김은 정규직 전환을 제안하는 부장에게 "저는 회사에 속박된 노예가 될 생각이 없습니다. 부장님"이라고 말하고 직장 회식은 "몸 버리고 간 버리는 테러행위"이라고 규정한다.
아울러 비정한 현실을 차가운 어투로 꼬집거나 냉소적으로 비웃기도 한다. 그는 인간적 분위기를 강조하는 회사 상사에게 "직장은 생계를 나누는 곳이지 우정을 나누는 곳이 아니다"고 쏘아 붙이고 선배에게 권고사직 처분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대해 괴로워하는 팀장에게 "엄살피지 마십시오 고장 난 시계는 버려지는 게 현실"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또 사내연애에 대해서는 "밝히는 수컷들과 속물적인 암컷들이 하는 불공정 짝짓기"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직장인 배종우(35)씨는 "원래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편인데 직장인들의 현실을 다룬'직장의 신'의 경우에는 직장과 사회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즐겨본다"며 "'미스김 어록'이 최근 사무실에서도 화제"라고 말했다. 또 다른 회사원 김현진(26)씨는 "회식을 과감히 거부하고 칼 퇴근 하며 업무상 이외에는 어떤 부당한 일도 용납하지 않는 미스 김의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게 된다"며 "미스 김은 말은 냉정하게 해도 실제로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캐릭터로 매력을 느낀다"고 밝혔다.
드라마'직장의 신'이 이처럼 인기를 모을 수 있었던 데는 탄탄한 일본 드라마 원작을 한국적 현실에 맞도록 잘 재구성한 작가 및 제작진의 노력이 뒤따랐다. 지난해 6월 일본 NTV의 인기 드라마 '파견의 품격'에 대한 판권을 계약한 '직장의 신' 제작진은 올해 1월까지 작품 재구성 및 사전 취재 작업을 하는 등 공을 들였다. '직장의 신'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한영훈 KBS PD는 "'파견의 품격'에 대한 리메이크 작업은 이미 수년 전부터 윤난중 작가와 논의해왔다"며 "원작 계약 이후 파견업체와 비정규직 직원들에 대한 인터뷰 및 현장 방문은 물론 노동법에 대한 연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사를 통해 한국적 현실을 반영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드라마 작가로 활동하기 전 한 복지재단 사무실에서 정규직으로 일한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윤난중 작가의 체험이 보태진 것도 작품의 디테일을 살리는 데 한몫을 했다.
물이 한껏 오른 김혜수의 연기력 또한 큰 몫을 하고 있다. 김혜수는 극중에서 포크레인을 직접 운전하고 회식 자리에서 탬버린 댄스를 추며 좌중을 휘어 잡는 것은 물론 '∼다만'으로 종결되는 특유의 어투와 과장된 몸동작 등을 선보이며 살아있는 '미스 김' 캐릭터를 구현하고 있다. 대중문화 평론가 정석희씨는 "김혜수의 절정에 오른 연기력 덕분에 시청자들이 다소 비현실적일 수 있는 캐릭터인 '미스 김'을 자연스럽게 받아 드리고 있다"며 "암울한 사회적 분위기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다루는 드라마에 대한 호응이 최근 높아지고 있는 점도 이 드라마의 성공 비결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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