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만드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간혹 내 이름으로 책을 내기도 하면서 책은 내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늘 손에 잡히는 것이 책이다. 이미 읽은 책이나 관심 영역에서 영원히 밀린 책들은 버리거나 기증을 하는 편인데 책을 처분하는 것이 나는 늘 어렵다. 한 권 한 권의 가치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알아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어린 시절, 그러니까 초등학교 4, 5학년 때까지는 고향집 책장에 꽂힌 수많은 책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 나이답게 집 뒤편의 개울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서가의 책들은 내게는, 마당 한 귀퉁이에 적재되어 있던 벽돌과 전혀 다를 게 없었다. 심상한 풍경, 가슴을 움직이지 않는 대상은 그것이 무엇이건 벽돌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토록 눈에 띄지도 않던 책들이 어느 순간부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책들의 제목과 활자를 내가 언제부턴가 눈으로 읽기 시작한 것이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먼저 톨스토이 전집이 기억나고, 한국근대소설선집도 기억난다. 도 있었고 도 있었다. 채만식과 김유정, 이상의 소설도 있었고, 김승옥과 최인훈의 소설도 있었다. 그것들은 신세계였다. 그리고 나는 이제 다시 내 눈에 띌 새로운 책을 기다린다. 그것은 설렘이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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